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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일

등록일 2024-09-03 19:34 게재일 2024-09-0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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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흔

다정해서 좋구나

뒷산 스님 혼자 기거하는 샛길은 은행잎이 샛노랗게 묻어두었다

아마도 스님은 출타 중인가 보다

나는 무밭에 나가 무 하나 뽑아 무생체를 만들고

옅은 커피 한 잔 듣고 테크에 나와 앉아 커피를 마시네

고양이는 종이상자 안에서 잠을 자고

햇살 받은 고양이 등이 하릴없이 따스하다

내일 일은 내일로 미뤄두고

오늘은 밤나무 숲에 들어가 벌레 숨어든

밤송이나 주워 와야겠다

저런 “다정해서 좋”은 ‘소일’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언제였던가, 이런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프다. 내일에 대한 어떤 걱정도 하지 않고 지금 다가온 감각을 만끽하는 소일.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어느새 마음에 걱정거리만 가득 찬 삶을 살게 되어서다, “내일 일은 내일로 미”루고, 종이상자 안에서 잠자는 고양이처럼 ‘소일’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버린 것. “밤송이나 주워 와야겠”다는 마음을 말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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