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유미
사랑이 망할 때마다/ 녹지 않는 눈이 내려
하늘의 살을 덮고/ 오래 잔다
꿈속에선 아무 잘못이 없어/ 이마를 내놓고 놀고
하늘에선, 내가 나를 포기하는 속도와 상관없이/ 눈이 계속 내리고
그럼 꼭 사면될 수 있을 것 같아/ 즐겁게 맞고
눈이 그치면 돌아가야겠지만/ 돌아갈 곳이 없이 눈은 그치지 않는
그런 꿈/ 그런 밤은/ 영영 밤이고
어느 날 다시 궁금해지겠지
가망이 없어 사랑이 망하는 걸까/ 사랑이 망해서 날 망치는 걸까
위의 시에 따르면, 사랑이 망하면 마음에는 “녹지 않는 눈이 내”리며 하염없이 쌓이기만 한다. 사랑이 망한 시인은 이 눈-‘하늘의 살’-을 덮고 잘 터, “나를 포기하는 속도와 상관없이” 내려주는 눈은 그래도 자신을 망치고 있는 시인을 사면해준다. 돌아갈 곳 없는 시인을 덮어주는 눈이 그치지 않고 내리는 밤, 하나 이 눈은 잠 속의 꿈에서 만날 수 있을 뿐이며, 그 눈을 덮고 자는 건 “영영 밤”을 사는 일과 같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