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윤
갓길로 등 굽은 노인이 걸어오는데요
어떤 슬픔은 녹이 슬어
다시 펼 수가 없습니다
먼 곳에서부터 달라붙는 죽음을
쿡쿡 누르며 걸어오는 지팡이
둘이 오래된 친구처럼 다정합니다
서로의 그림자를 밟던 걸음이
개나리와 손잡고 피어나는 봄날
한 줄로 그어 놓은 공중의 길
당신은 버스 창가에 앉아
지상을 보고 있네요
풀숲 위로 손 하나가 날아오릅니다
손바닥을 접었다 펼칠 때마다
웃는 얼굴이 뭉텅뭉텅 지워집니다
손이 마치 지우개 같습니다
악수란 그런 것이겠지요
- ‘나비’후반부
‘상가 다녀오는 길’에 어떤 등 굽은 노인을 보면서, 시인은 그 노인에게 달라붙으려 하는 죽음”을 포착한다. 그 노인에게 슬픔은 오래 달라붙어 있어서 녹이 슨 정도, 노인은 겨우 지팡이로 지하에서 올라오는 죽음을 “쿡쿡 누르”고 있다. 지팡이만이 그의 ‘오래된 친구’인 것. 봄날 피어나는 개나리는 저 죽어가는 노인과 대조되는데, 마치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저승으로 가는 길로 인도하는 나비처럼 보인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