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나
기차가 또 나를 지나갔다
철길에 엎드려있던 마음이
우두커니 지나간 기차를 본다
다리를 절룩이며
달빛이 일어서고 있다
크고 작은 별들이 쏟아지고
온갖 기억들이 맨발로 걸어온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내 기억의 끝은 늘 맨발이었다
백 년을 걸어도 돌아보면 벌판이었다
(중략)
뭉큰 돋아나는 기억을 싣고
어디 가닿는 데도 없이 기차는 또 달린다
철로 옆에서 지나가는 기차를 ‘우두커니’ 보며 어떤 아련함을 느끼곤 했다. 위의 시는 이 아련함의 정체를 말해준다. ‘나’를 지나치고는 사라지는 기차는 잊고 있었던 기억을 “뭉큰 돋아나”게 한다는 것. 이때 “기억들이 맨발로 걸어”오고, 절룩이는 달빛이 맨발의 기억을 비춘다. 기차가 주는 아련함은 이 기억으로부터 오는 것, 시인에게 다가온 기억은 무엇인가.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 하여 늘 벌판이었던 삶….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