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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부분)

등록일 2024-08-11 18:21 게재일 2024-08-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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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나

기차가 또 나를 지나갔다

철길에 엎드려있던 마음이

우두커니 지나간 기차를 본다

 

다리를 절룩이며

달빛이 일어서고 있다

크고 작은 별들이 쏟아지고

온갖 기억들이 맨발로 걸어온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내 기억의 끝은 늘 맨발이었다

백 년을 걸어도 돌아보면 벌판이었다

 

(중략)

 

뭉큰 돋아나는 기억을 싣고

어디 가닿는 데도 없이 기차는 또 달린다

철로 옆에서 지나가는 기차를 ‘우두커니’ 보며 어떤 아련함을 느끼곤 했다. 위의 시는 이 아련함의 정체를 말해준다. ‘나’를 지나치고는 사라지는 기차는 잊고 있었던 기억을 “뭉큰 돋아나”게 한다는 것. 이때 “기억들이 맨발로 걸어”오고, 절룩이는 달빛이 맨발의 기억을 비춘다. 기차가 주는 아련함은 이 기억으로부터 오는 것, 시인에게 다가온 기억은 무엇인가.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 하여 늘 벌판이었던 삶….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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