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애
기억의 뒤편에 있던 ‘첫’
그가 하얀 꽃송이로 왔다
밤새 하얗게 내려 쌓인 첫눈
검은 발자국들 소리 없이 덮은 눈꽃 세상이
내 눈으로 들어온다
‘첫’들이 솟구치는 방의 문고리를 연다
깊숙한 방에서 한 장 한 장 화선지를 들추면
첫 아기, 첫 노래, 첫 학교, 첫 동무, 첫 영성체, 첫 무대, 첫 운동화
첫 색동저고리, 첫 심부름, 첫, 첫….
에밀레 종소리처럼 퍼지는 음파, 하얀 첫눈
목어木魚도 으스레를 친다
차별 없는 저 하얀 손길
오늘 나도
첫 눈꽃 송이가 되는 꿈을 꾼다
밖에는 올해 첫눈이 내리고, 마음 뒤편의 기억이 ‘솟구치’듯 되살아난다. ‘첫 아기’부터 시작하는 ‘첫’에 대한 기억들. 하여, 첫눈은 ‘에밀레 종소리’처럼 은은하게 퍼지며 시간을 되살리는 음파다. 그렇게 첫눈은 거리를 더럽히는 ‘검은 발자국들’을 덮으며 세상을 순결하게 변모시키고, 그 순결한 ‘하얀 손길’은 차별 없이 세상을 어루만진다. 시인도 이 손길의 은총을 받아 ‘첫 눈꽃 송이’으로 변모하는 꿈을 꾼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