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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들(부분)

등록일 2024-07-24 20:03 게재일 2024-07-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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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은

너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을

아삭아삭 씹어 먹는다

나는 익히 당근을 좋아하는데

걱정도 조리해 먹으면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삶은 옥수수에 마요네즈를 넣고 버무리면 샐러드의 세계

웅크리고 있는 양파에 간장을 쪼르르

부으면 장아찌의 세계

 

껍질이 연한 기분을 골라 찬물에 씻는다

저녁이 토마토처럼 빨갛게 익는 동안

뿌리가 발바닥을 뚫고 자란다

 

창밖엔 줄기가 부러진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있다

다 익은 영혼을 헤쳐보면 작은

벌레가 자라고 있다

남이 가하는 힐난을 당근 먹듯 먹고, “걱정도 조리해 먹”는 화자. 그에게 사람살이는 음식과 같아서, 삶은 샐러드나 장아찌의 세계로 나타난다. 그렇게 우리 앞에 펼쳐지는 삶을 어떤 음식처럼 먹으며 자란 사람은 “뿌리가 발바닥을 뚫고 자”라는 식물이 된다. 그 중에 어떤 이는 “줄기가 부러”져 버리고, 어떤 영혼 익은 ‘식물-사람’ 속에는 “벌레가 자라고 있”기도 한다. 식물로서의 삶에도 고통은 여전한 것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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