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린
건물은 비상구를 전부 갖고 있는데
사람만 갖고 있지 않다
아니다 누구나 비상구가 있다
그저 사용하지 않을 뿐이다
스스로 폐쇄시키거나 열지 않는 사람들
그중에 한 명은 기필코 내 어머니다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았던 사람처럼
어머니는 어머니를 끝까지 탈출하지 않았다
평생 누군가의 비상구만 되어준 이력
(중략)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나는 궁금했다
비상구가 처음으로 열린 걸까
마침내 닫힌 걸까
누구나 자신의 현재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가질 터, 하나 탈출하는 이는 거의 없다. “누구나 비상구가 있”지만 사용하지 못하기에. 대부분의 어머니들 역시 ‘어머니’로부터 탈출하지 않는데, 그들은 스스로 비상구를 폐쇄시키고 “처음부터 갖지 않았던 사람처럼” 살아간다. 그것은 사랑 때문일까. 그들이 죽었을 때엔 사랑의 굴레로부터 벗어난 것일까, 비상구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난 것일까. 시인의 의문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