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처
울렁거리는 지층에서 태어났다
검은 줄과 흰 줄의 팽팽한 줄다리기다
(중략)
얼룩이 상처라면
덜룩은 그만큼의 공백
얼룩이 눈물 자국이라면
덜룩은 빠져나오기 어려운 그늘
울타리 밖의 삶을 기웃거리지만, 울타리 안에 스스로를 가둔
말은 이따금 제 안의 파도를 뚫고 나온다
얼룩, 안간힘으로 울타리를 부순 흔적
산등성이 다량논과 논두렁의 고단함 같은
이젠 악기도 가구도 아닌 피아노처럼
검은 말도 흰말도 아닌 모호한 말
내가 만든 철창에 다시 갇히는 말
얼룩덜룩 얼룩말. 시인은 “울렁거리는 지층” 같은 ‘얼룩’에서 상처에서 빚어 나온 눈물을, ‘덜룩’에서는 그 눈물 뒤에 드리워진 그늘을 읽는다. 얼룩말의 ‘얼룩덜룩’은 “울타리 밖의 삶”에 대한 욕망과 “울타리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야 하는 그늘의 삶과의 갈등에서 그려지는 것, “제 안의 파도를 뚫고 나”오는, 음악의 울렁거림 같은 표현이 ‘얼룩-눈물’이며, 그 얼룩은 시인이 발하는 말(語)과 같음을 시는 말해준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