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경북매일’, 34세 ‘학자’와 만나다<br/>오은진 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34년, 34세.
꿈과 도전의식으로 의기양양했던 10대와 20대를 지나고, 질풍노도와 시행착오의 청년기를 마무리하며 장년으로서의 성숙을 준비해야 할 시기고, 나이다. 이는 조직이나 개별 인간이 크게 다를 바 없다.
눈 밝은 옛사람들은 34년, 34세를 이립(而立·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당당하게 선다는 뜻)을 지나 불혹(不惑·세상 잡사에 현혹되지 않는다는 의미)으로 가는 중간 지점이라 봤다.
본지가 올해 창간 34년을 맞았다. 장구한 세월이라 할 순 없지만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앞서 언급처럼 ‘성숙을 준비해야 할 때’인 것이다.
포항에 기반을 둔 신문사로서 동갑내기 지역민 중 주목할 만한 사람을 찾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아닌, 조직과 사람 사이에도 벤치마킹과 반면교사(反面敎師)가 가능하니까.
1990년 6월 포항에서 태어나, 포항공대에서 공부했고, 현재 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로 일하는 오은진(34)씨가 기자의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오 교수는 지난해 1970년대부터 연구된 중요한 과학적 과제의 해결 실마리를 제시한 논문으로 학계에서 주목받았고, 교수가 되기 전엔 컴퓨터 이론 분야 우수 연구자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리제 마이트너상(Lise Meitner Award)을 한국인 최초로 받은 사람.
인간과 사물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제대로 판단하는 현명함을 얻기 위해선 성실과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그 외엔 어떤 게 더 필요할까?
이 질문은 34주년 ‘이후’를 준비해야 하는 본지와 아직 ‘걸어야 할 길’이 먼 34세 젊은 학자 모두에게 의미 있고 유용할 듯했다.
포항공대 오은진 교수는 바쁜 일정임에도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초여름 햇살이 목덜미를 기분 좋게 간질이던 지난주. 강의를 마친 오 교수를 만났다. 무엇보다 환한 웃음이 보기 좋았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수학을 좋아하던 소녀 ‘고향’으로
포항서 태어나 타지서 보낸 유년시절
포항공대서 공부 현재는 교수로 재직
과학자로 산다는 건 어떤가
오랜 시간 노력과 고민으로 푼 문제
연구자만의 ‘카타르시스’ 느끼게해
삶에서 이루고 싶은 건
잃어버린 길을 찾는데 도움이되는
오랫동안 기억될 논문을 쓰고 싶어
-1990년생으로 알고 있다. 정확한 출생일과 출생지는.
△1990년 6월 17일에 포항 성모병원에서 태어났다. 이번에 알게 된 것인데 ‘경북매일’과 태어난 달까지 같다.(웃음)
-그렇다면 유년시절도 포항에서 보낸 건가.
△태어난 직후 부모의 직장을 따라 경기도 안양과 충청남도 천안 등에서 생활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경기도에서 졸업했다.
-대학에 입학하며 태어난 곳으로 돌아온 셈인데, 포항공대를 선택한 이유는.
△어릴 때 수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니, 수학 공부도 열심히 했다. 포항공대에 오기로 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수학이 재밌었고, 그 분야를 더 빨리 더 많이 알아보고 싶어서다. 포항이 ‘내 마음속 고향’이라 고민의 시간도 짧았다. 더불어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했는데, 우리 학교는 타 대학에 비해 조기 졸업생이 많았고, 그들에게 호의적이었다. 입학을 위한 면접을 보러 왔을 땐 조용한 캠퍼스 분위기와 따뜻한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공부와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다.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모두 포항공대에서 했다. 학교를 떠나기 싫었던 것인지.
△포항공대엔 학사 과정을 마친 후 석·박사 과정을 그대로 여기서 이어가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타 대학에 비해 그 비율이 높다고 알고 있다. 학사 과정 공부를 해보니 학교와 포항이란 도시가 썩 마음에 들었다. 굳이 석·박사 과정을 이어갈 다른 학교를 찾아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성격이 내향적이라 익숙한 공간이 편하기도 했고.
-‘박사 후 과정’(Postdoc)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했다고 들었다. 어떤 곳인가.
△독일 여러 곳에 산재한 독립적인 연구소의 집합체라고 보면 된다. 일반과학 전 분야를 다루는 연구기관이다. 2018년 봄부터 1년 6개월쯤 거기 있었다.
-당신의 주요 연구 분야가 뭔지 알기 쉽게 설명한다면.
△컴퓨터공학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면 알고리즘이 필요하다. 그걸 수학적으로 정의하고 풀어내는 일이다. 예를 들면 택시 여러 대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중 어떤 택시를 선택해 승차하는 게 사람들에게 가장 유리하고 합리적인지 찾아내는 거다. 좀 더 확장하면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할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 연구를 한다고 설명하면 될 듯하다.
-과학자(연구자)로 산다는 건 어떤가. 재미는 없을 것 같다.
△왜 연구자의 삶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웃음) 풀고 싶은 문제가 있는데 그것의 해결을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하고 고민하다가 마침내 그 문제가 풀렸을 때 느끼는 연구자만의 ‘카타르시스’ 같은 게 있다. 내 경우 다른 일을 하면서는 그런 감정을 맛본 적이 잘 없는데, 연구 과정에선 자주, 그리고 강하게 느낀다.
-연구와 강의 외의 시간에 즐기는 취미는 뭔가.
△사실 공부하고 학생들 가르치는 일이 일상생활의 거의 대부분이다. 남자친구와의 가벼운 산책은 언제나 즐겁다. 출장이 잦은 편인데 그걸 여행처럼 즐기려고 노력 중이다. 바다 보는 걸 좋아하는데 포항에 살고 있으니 행운이라 생각한다. 독일에서 공부할 땐 해변이 그리워 스웨덴 스톡홀름(Stockholm)의 차갑고 맑은 바다를 보러 가기도 했다.
-스물아홉 살에 교수가 됐으니 벌써 5년차다. 포항공대 학생들의 특징과 따뜻한 사제 관계를 맺는 노하우는.
△다른 대학 학생들을 만난 적이 드물어 비교하긴 조심스럽다. 다만 우리 학교 학생들은 순수한 면이 있는 것 같다. 학문적 열정이 느껴져 그것도 좋아 보인다. 관계 맺기의 노하우라…. 제자들이 힘들어하면 “나도 10년 전엔 너희와 같은 입장이었어”라고 해준다. 이런 말이 ‘너를 이해하려 노력할게’라는 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연구자와 교수로서 세운 장기 계획과 단기 계획은.
△짧게는 지금 진행하고 있는 몇 가지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마무리가 중요하다. 학생들과 함께 하는 연구라 잘 마치고 싶다. 최근에 장기간 진행할 연구 과제를 하나 받았다. 이걸 받기 위해 고심하며 계획을 세웠다. 지금까지는 하나의 거대 목표를 향해 가는 게 아닌 당장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을 써왔다. 좋은 기회가 왔으니 앞으로의 10년은 보다 큰 문제의 해결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볼 생각이다.
-당신이 삶에서 이루고 싶은 건 뭔가.
△나는 심오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연구도 지금 당장이 재밌으니까 했고, 그러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한참 후의 일이 되겠지만 사람은 죽어도 그가 쓴 논문은 어떤 형태로든 남는다. 내가 사라진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내 논문을 읽고 길을 찾는데 도움을 얻었으면 좋겠다. 어떤 연구는 1~2년이 지나면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 반면, 어떤 논문은 10년이 지나도 읽힌다. 오래 기억될 논문을 쓰고 싶다.
-당신과 같은 해, 같은 달 태어난 ‘경북매일’이 창간 34주년을 맞았다. 꽤 긴 시간 알게 모르게 같은 공간 포항에서 지내온 지역 언론에게 축하와 격려의 말 한마디 부탁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34년 동안 꾸준히 시민과 함께했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듯하다. 나와 같은 공간에서 태어나 현재까지도 같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포항에서 오래 살았음에도 이 지역을 잘 몰랐고, 지역사회에 기여한 부분도 거의 없어 부끄럽다. 이에 비해 신문사는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작지 않은 사회적 기여를 한 것 아닌가? 포항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