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발을 디딜 때마다, 천년고도의 황토 빛이 저녁노을과 함께 내 눈동자에 스며온다. “아베요 오늘이 아베 젯날”이라고 하얀 이밥 한 그릇 제상에 올려두고 기제사를 드리는 만술아비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반월성을 휘돌아 바람에 번진다. 박목월은 왜 이토록 신라 천년의 경주의 말씨를 보듬었을까? 리듬과 운율이라는 순수시의 비장을 그는 간과하지 않았던 것이다. 50년대 이미지즘의 시가 순수시와 함께 이 땅에 밀려오면서 표현에 공헌하지 않는 말은 가능한 한 배제하고, 대신 표현의 순수성을 유지했던 시인의 심성이었다. 이는 민요적 리듬의 효과를 노리는 동시에 이미지즘을 추구한 몸에 밴 감각적 시쓰기의 결과였으리라. 박목월은 ‘눌담’, ‘적막한 식욕’, ‘치모’, ‘만술아비의 축문’, ‘이별가’ 등에서 방언 어휘뿐만 아니라 경상도의 운율과 가락을 깔아두었다. ‘이별가’에서 외치는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에 보이는 ‘뭐락카노’는 경주의 악센트를 제거하고는 아무런 이미지의 맛을 건져낼 수가 없다. 단순히 향토성이니 경상도 정체성을 담아낸 시로만 규정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경상도 악센트다.
‘만술아비의 축문’에서 “내 눈이 티눈인 걸 아베도 알지러요” 대목의 방언적 형상을 온전히 해석하지 못한 평론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듯이 박목월의 ‘불국사(佛國寺)’라는 시에서 ‘흐는히’라는 시어의 해독을 방언적인 표현이라고 가정하면서 “흥건히” 혹은 “몹시 그리워 동경하여”의 사투리로 해석한 평론가도 있었다. “흰 달빛/자하문//달 안개/물소리//대웅전/큰 보살//바람소리/솔소리//범영루/뜬 그림자//흐는히/젖는데//흰 달빛/자하문//바람소리/물소리”. 박목월 ‘불국사’ 전문이다. 이 작품에 대한 시 형식과 운율에 대해서는 정교한 해석들이 이어져 왔다.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를 적절하게 조화한 풍경화같은 불국사의 전경들을 그려내고 있다. 운율적 표현 양식의 특징으로 3음절 대련 형식의 형식적 미학의 품격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수미상관의 구조적 여백이 불국사의 전경과 함께 적절하게 조화를 보이는 작품이다. 이 시는 설명적인 이미지를 배제하고 “허사가 거의 없는 실사로 현상학의 판단 중지”(김춘수 ‘시의 위상’ 77쪽) 상태로 장면을 훌륭하게 제시한 명작이다.
그런데 문제는 ‘흐는히’라는 시어에 대한 해석이다. 이 단어는 표준어 사전에 없는 단어인데 동시에 경주방언이라고 단정할 근거도 없다. 그러면 ‘흐는히’라는 낱말의 정체는 무엇일까? 오자인가? 그럴 리가 없다. “매우 기쁘고 만족스럽다”라는 뜻을 가진 ‘흔흔하다’라는 표준어형을 마치 방언처럼 음절을 재조정한 방언표준형이라고나 할까? 경주방언에서는 유성음 사이에 흔히 ‘ㅎ’이 탈락되는데 여기에 ‘ㄴ’을 밀어 넣어 마치 표준어인 양 방언을 사용한 결과인 듯하다.
최근 시인이 돌아가신 지 46년 만에 시인의 맏아들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가 아버지의 비공개 육필시 166편을 세상에 소개하였다. 우리나라 순수 이미지즘 시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함께 시인 자신의 시적 변화의 궤적을 연구하는데 엄청난 도움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에 공개된 시편 가운데 ‘용설란’이라는 시에서는 제주 토종의 용설난을 의인화하였다. 어김없이 ‘사투리’를 사용하였다. “어눌한 사투리로 가까스로 몸매를”이라고 표현하면서 “파도소리에 뜰이 흔들리는 /(중략)/ 반쯤 안개에 살아나는 제주도.// 말 辯의 깃자락에 소나기가 묻어오는/ 그 낭낭한 모음의/ 하늘./ 한라산.// 어눌한 사투리로 가까스로 몸매를/ 빚어,// 안개에 반쯤 풀리고/ 안개에 반쯤 살아나는 용설란.” 이 시에서는 제주방언에 남아 있는 아래아를 사용하여 “말 辯의 깃자락에 소나기가 묻어오는” 아래아를 텍스트로 옮겨내고 있다. “그 낭낭한 모음의/ 하늘./”에서의 ‘하늘’은 제주의 하늘이 아니다. 제주의 하늘은 아래아 하늘인 것이다. 이러한 시인의 섬세함을 유성호 교수는 “고향에 와서도 고향을 떠나고 타향에 가서도 고향을 발견하는 이중성”이라고 설명했으나 이것은 오류이다. 제주 용설란에서 발견한 ‘낭낭한 모음’은 ‘아래아’가 살아있는 제주의 방언이다. 시인은 어설프고 어눌하지만 제주의 사투리로 제주의 용설란을 이미지화 한 것이다.
이처럼 위대한 시인의 작품을 비평가들이 자칫 잘못 평가하여 시 작품의 본의를 허문 경우가 적지 않다. 박목월의 미발굴 작품집이 6월쯤 선보일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