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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의 제주 해녀들의 노래

등록일 2024-04-29 18:41 게재일 2024-04-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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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허영선 시인의 시집 ‘해녀들’(문학동네 시인선 95)은 21명의 제주해녀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사랑을 품지 않고 어찌 저 바다에 들겠는가”라는 주제시 21편과 산문 한 편으로 엮었다. 제주의 바다는 단 한 번도 누워있질 못한다. 늘 물거품을 일으키며 세로로 일어서려고 몸부림친다. 물의 깊이에 따라 흰색에서 푸른색, 검푸른 색으로 끝없이 펼쳐진 제주의 바다를 일터로 삼은 해녀들의 노래이다.

허영선 시인은 “내 안에 오래도록 꽉 차 있던 소리/숨이 팍 그차질 때 터지는 그 소리/숨비소리/그 소리를 따라 여기까지 왔다.”며 해녀들이 깊은 바다 속에서 참을 대로 참다가 내뱉는 가쁜 숨소리인 숨비소리에서 가슴에만 담아오며 단 한 번도 내뱉지 못한 제주의 한 많은 역사의 소회를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허영선 시인의 눈에는 제주바다가 푸르지 않고 붉다. 심장을 드러낸 칸나같은 붉은 빛이다. 4·3항쟁의 아픈 희생을 입 밖으로조차 표현하지 못한 제주토박이들의 한을 해녀의 숨비소리로 형상화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제주방언, 제주의 소리, 제주의 토박이 언어로 자신들의 삶을 노래한다. 그러나 그들의 언어는 어느 한 군데도 원한에 찬 언어는 없다. 오히려 죽음이라는 위험과 맞바꾸어온 벅찬 생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해저 깊이 납덩어리를 차고 잠영하는 제주의 여성들, 둥그런 태왁을 안고 풍덩 거꾸로 내려잠수하는 해녀와 그들이 채취해온 ‘ㅁ·ㅁ’의 동그란 모양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제주의 아픈 역사가 불그레 물든 제주의 바다에서 숨이 찰 때까지 물질로 걷어낸 아픔과 슬픔으로 끓인 ‘ㅁ·ㅁ국’ 한 사발로 추위와 고통을 풀어낸다. 4·3항쟁 당시 450여 명의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북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 ‘북촌 해녀사’를 읽어본다. “남자들이 모두 핏빛 바다로 떠난 그날 이후/북촌 여자들은 물질할 수 없으면/바다를 떠나야 했다//그날 이후/북촌 여자들은 온통 바위섬을 건너야 했다//(중략)모두가 대군/물질 끝나 돌아가던 통통배/순간 한 치 눈치챌 수 없이 매복하던/강골의 바람살이/물귀 물 아래 위태위태하더니/엎어지고 까무라치고 부서지더니//북촌 해년 너도 나도 혼 줄 모아/기댔다 두렁박 하나에/등대처럼 기다리는 힘 하나/파도 건너 또랑또랑/어린 입, 입들.” 파도에 휩쓸려 죽음을 이겨야 하는 해녀, 그녀들은 왜 물질하는 해녀가 되었으며 집에 남겨둔 아이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품지 않고는 어이 저 컴컴한 죽음과 같은 바다 속으로 들어갔겠는가?

“우린 몸을 산처럼했네”에서는 물질을 하여 ‘ㅁ·ㅁ’을 산처럼 채취만 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다시 팔러 나선 해녀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얘기한다. “깊은 바다 그것이 미욱거릴 적/물결 따라 스러져 너울거릴 적/우린 맹렬하게 구애를 했지/몸이 베이는지/몸이 베이는지/ㅁ·ㅁ 삽서/ㅁ·ㅁ 삽서/밀어닥친 흉년에도 우리 몸으로 ㅁ·ㅁ을 했네”에서처럼 제주어에 남아 있는 고어 ‘아래아’를 현대어로 옮기면 ‘ㅁ·ㅁ’이 ‘몸’이 되어 ‘모자반’을 채취한 것인지, 아니며 물질하는 해녀 자신의 신체, 즉 몸을 벤 것인지 모를 정도다. 열심히 모자반을 채취하여 이것을 “ㅁ·ㅁ 삽서, ㅁ·ㅁ 삽서” 외치며 팔러 다닌다. 밀어닥친 흉년에도 굶을 수는 없어 깊은 바다 속으로 몸을 던져 ‘ㅁ·ㅁ’을 건져 올리는 제주 여성들의 고달픈 삶이 선연하다.

삶이라는 사랑을 가슴에 품지 않고서야 우주의 분홍 젖꼭지를 드러내며 너울거리는 심연의 바다 속으로 뛰어 들 수 있을까? 빈 몸통으로 깊은 숨을 쉬었다가 깊은 고통이 가득 차오르면 겨우 숨통을 틔우는 해녀들. “어디서 징징징 쇠북소리 울리거든/붉은 칸나가 심장을 드러낸 채 바다로 가거든/한번 돌아보셔요/먼 바다 바람타고 떠나가는 내가 보일 거예요.”

“우리 애기 울면 젖 호끔 멕여줍서”에서는 거친 물결에 휩쓸려 죽기 직전 “저 차귀섬 위 큰 마당까지 헤쳐갔다지/물 터지면 올라오지 못해/몸은 자꾸 아래로 허우적허우적/금릉인가 어디까지 막 밀려갔다지 순간,//그 여자 막숨 하나 부여잡고 소리쳤다지/“우리 애기 울면 젖 호끔 멕여줍서”/라고 외치며 죽어간 김녕 해녀의 눈물 쏟는 이야기를 전한다. 허영선 시인의 제주 해녀들의 힘들고 벅찬 삶의 순간순간을 제주의 생생한 목소리와 눈물로 써서 우리에게 전한다. 허영선은 늘 세로로 일어서려는 붉은 제주 바다를 거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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