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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4-04-28 18:37 게재일 2024-04-2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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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카와 슌타로 (요시카와 나기 옮김)

솔직히 말해서

책은 흰 종이로 있는 게 좋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로 있고 싶었다

 

그러나 벌써 책이 되고 말았으니

옛날의 일을 잊어버리려고

책은 자신을 읽어보았다

‘솔직히 흰 종이로 있는 게 좋았다’고

검은색 활자로 쓰여 있다

 

나쁘지 않다고 책은 생각했다

내 마음을 모두가 읽어준다

책은 책으로 있다는 게

조금 기뻤다

 

책은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은 흰 종이로만, 나아가 종이로 되기 이전인 나무로 존재하고 싶었다고. 인공화 이전 존재로 있고 싶었던 것. 하나 “벌써 책이 되고 말았”으니, 이제 책은 자기 위에 쓰여 있는 글자-내 -를 읽어본다. 그러자 그는 “내 마음을 모두가 읽어”주는 일이 나쁘지 않다고 느끼고는, 자신이 “책으로 있다는” 걸 비로소 긍정한다. 여기서 ‘책’을 시인, 책의 활자를 시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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