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하
상극이고 웬수인 사람이 죽으니
한 줌 뼈밖에 없고
오 분을 동석하기 힘든 사람이 죽어도
재 한 줌밖에 없고
동해 파도는 질리도록 밀려오는데
질리지 않고
질릴 리 없고
허공은 무한대의 눈발 들끓고
그날 감정이 얼마나 미세한지
떨어지는 눈송이 하나에도
천지가 가만히 있질 않았다
자연의 무한 앞에서 미움은 얼마나 작은 감정인가. 그렇게 미워한 사람도 죽음 이후에 “한 줌 뼈”, “재 한 줌”으로 남을 뿐이다. 시인 또한 미래엔 그렇게 남게 될 터, 하지만 이 무한한 허공과 “질리도록 밀려오는” 파도 앞에서 시인이 느끼는 감각은 숭고함이라기보다는 미세함이다.“무한대의 눈발” 속에서 그는, “떨어지는 눈송이 하나에도 천지가” 거대하게 진동하며 들끓는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