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카노르 파라(박대겸 옮김)
오랜 세월 지나고 다시 오랜
세월이 지나서, 대기가 당신 영혼과 내 영혼 사이에
구덩이를 판다면, 오랜 세월이 지나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으로 나 홀로 남는다면,
당신의 입술 바로 앞에 멈춰버린 존재로,
정원을 거니는 것마저 피곤해진 가련한 사람으로 남는다면,
당신은 어디에 계시려나? 대체 어디에,
당신, 오 내 입맞춤의 소산이여!
시의 제목이 ‘낯모르는 여인’이지만, 시의 마지막 행에 따르면 당신은 ‘입맞춤의 소산’이다. 오랜 세월의 “대기가 당신 영혼과 내 영혼 사이에/구덩이를” 파서 당신으로부터 시인이 멀리 떨어지게 된다면, 그땐 당신은 낯선 존재가 되리라고 시인은 말하려는 것 같다. 하면, 위의 시는 “당신의 입술 바로 앞에 멈춰버린 존재”가 될지 몰라 불안한 시인이 사랑이 소멸되었을 먼 미래의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라 하겠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