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안
눈이 오면 땅은 몸에 박힌 발자국을 밀어낸다./ 발자국이 향하고 있는 끝에/ 네가 있다.
(중략)
나는/ 나무가 되지 못하고/ 고라니가 되지 못하고/ 별도 아니어서/ 네가 있어/ 제자리에서 발만 구르며 끝을 바라볼 뿐인데
그건 병든 몸을 바라보는 신비주의자의 믿음이라고/ 저 빈 하늘/ 저 차가운 하늘/ 가득
새 한 마리/ 제 그림자를 움켜쥐고 날아가자/ 어둠이 눈발처럼 날리기 시작한다. 이제는 착하게만 살 뿐./ 쓸 뿐./ 살아내 써낼 뿐.
‘엠페리파테오’는 성경에 나오는 헬라어로, (하나님이) 순시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시인은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영혼의 구원이라는 ‘신비주의’의 의미에서 이 단어를 쓴 듯하다. 땅 위에 쌓이는 눈이 발자국을 밀어내고, 이 “발자국이 향하고 있는 끝”에 있는 너를 시인은 “발만 구르며” 바라본다. 나무나, 별, 고라니처럼 순수한 존재여야 네게 갈 수 있는 것. 다만 그는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살아내 써낼 뿐”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