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호
상처 입은 짐승은/ 동굴 깊이 숨는다
일 년이 간다/ 십 년이 간다
상처는 깊었지만/ 깊은 만큼 깊이 숨어/ 겨우 아문다
그런데 나가는 길을 잃는다/ 나갈 수가 없다
길을 잃은 상처는/ 다시 도진다
깊이 숨은 만큼 깊게 도진/ 상처가/ 벽을 긁는다
예술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위의 시에 따르면, 상처가 아물도록 들어간 동굴에서 나가는 길을 잃은 이들이, 상처가 도져 벽에 무엇인가를 긁는 데서 예술은 시작된다. 하여 최초의 예술은 벽화였다. 깊이, 오래 숨을수록 상처도 깊어지고 벽화 역시 깊어질 터, 그런데 예술의 주체는 상처 입은 자가 아니라 상처 자체라는 점에 주목하자. “벽을 긁는” 일은 상처가 하는 것, 즉 고통의 힘이 예술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