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늦은 졸업장...어떤 환경이어도 꿈을 가둘 수 없다
국민의힘 김미애 국회의원(부산 해운대 을)이 26일 포항여고에서 35년 늦은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포항여고가 명예졸업장을 수여하기는 개교 84년 이래 처음이다.
김 의원은 1985년 포항여고에 입학했으나 한 달 여 만에 가정형편이 어려워 자퇴 후 부산의 방직공장에 취직하면서 포항을 떠났다.
김 의원에 대한 명예졸업장 수여는 김 의원이 지난 7월 11일 포항여고 전교생을 상대로 실시한 ‘약자와의 동행’이란 주제의 특강 후 동창회의 제의를 학교 측이 수용, 성사됐다.
김 의원은 이날 졸업한 82회 182명을 비롯 전교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단상에 올라 민형규 교장으로부터 명예졸업장을 품에 안았다.
민 교장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 온 김 의원이야말로 살아있는 귀감”이라면서 선배를 보며 후배 학생들이 더 많은 자신감을 가졌으면 한다고 축하했다.
김 의원은 명예졸업장을 받은 후 행한 인사말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지만 포항여고 졸업장은 한참 늦어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복받친다”며 “부산에서 오는데 아무 생각이 없었다. 1985년 봄은 너무나 추웠다. 그 시절, 너무 두렵고 외롭고 배고팠다. 그 슬픔과 아픔이 너무나 큰 탓인지 학교 근처로 우연이라도 지나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사람마다 모양과 크기와 넓이, 깊이는 달라도 어떤 아픔과 슬픔이 있을 것”이라며 “다 이겨내길 바란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넓다. 꿈꾸는 그 세상은 한계가 없다. 어떤 환경이어도 꿈을 가둘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오늘 저와 함께 졸업하는 182명의 졸업생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여러분들의 멋진 꿈을 응원한다. 꿈을 마음껏 펼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김 의원은 이날 페이스 북에도 명예졸업장을 받는 소감을 올렸다.
‘포항여고 제1호 명예 졸업장 받으러 가는 길...
1985년 봄은 너무나 추웠다.
어젯밤 포항여고 46기 동창회장이라는 분의 전화를 받았다.
"1호 명예 졸업장 받는 걸 축하합니다."
"근데 몇 반이었어요?"
"친한 친구는 누구였어요?"
"담임 선생님은 누구였어요?"
......
사실 나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시절, 너무 두렵고 외롭고 배고팠다...
그 슬픔과 아픔이 너무나 큰 탓인지 학교 근처로 우연이라도 지나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중2 때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나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았다.
서너 번 버스를 타야 하는 신작로길...
새벽에 집을 나가 자정 무렵 울퉁불퉁 신작로 길을 걸어 돌아오는 길이 무서웠지만
그보다 더 한 건 설움이었다...
숱한 감정들이 엉겨 모든 기억을 하얗게 지워버렸나?
하여튼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입학식 때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일주일 늦게 학교를 가기 시작하여
한두 달 다녔지만
늘 돈 걱정 뿐이었다.
'내일은 버스비를 어떻게 구하지'
그렇게 한두 달 다니다
비오는 봄날, 포항여고가 아닌
부산가는 버스비만 들고 고향을 떠났었다.
이후 37만에 지난 여름,
포항여고 후배들에게 특강을 했었다.
그리고 오늘은 35년 늦은,
포항여고 제1호 명예졸업장을 받는다.’
앞서 김 의원은 7월 11일 자퇴 후 처음으로 포항여고를 방문, 후배들에게 ‘자신이 왜 포항여고를 떠나야했는지부터 그동안의 삶과 자신이 지향하는 정치철학’ 등을 후배들에게 특강한 바 있다.
당시 김의원은 포항여고 특강을 오면서 페이스 북 ‘미애의 이야기’ 코너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
'1985년은 정말 슬펐습니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포항여고에 합격은 했으나 등록금이 없었지요.
그래서 중3 겨울방학 때 경남 양산에 있는 깡통 제조공장에 가서 불량품 선별하는 일을 했습니다.
당연히 포항여고 입학식도 못 갔고 검정고시로 대학에 가야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입학 후 1주일 즈음, 오빠가 등록금 넣어뒀으니 학교에 다녀라 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포항여고 뺏지를 달고 기쁜 맘으로 등교했습니다.
친구들보다 1주일 늦은 입학이었죠. 근데 학교까지 서너 번 버스를 타야 했는데 버스비가 없었습니다.
아침밥 해먹고 걸어서 구룡포 읍내, 포항버스 타느라 학교는 매일 지각, 도시락도 못 싸가고, 참고서 한 권 없이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았지만 머리로는 차비걱정 뿐이었지요.
가장 우울한 나날들이었답니다.
결정적으로 자존심에 상처 난 사건이 생겼습니다.
늘 외톨이이던 내게 친구들이 불우이웃돕기 모금을 해 주었고 교장선생님께서는 전교생이 모인 조례시간에 우리 반 친구들을 칭찬했습니다.
아, 나는 그때는 아직 그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만한 그릇이 못 되었지요.
그 주 일요일, 공장 다니는 친구 따라 부산으로 와 버렸습니다.
그 때 그 경험 덕에 저는 기부할 때, 받는 사람 입장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 그 아픔도 모두 이겨냈고, 한참 어린 후배들께 용기를 드리고자 합니다.'
김 의원은 이날 초청 특강에서 "어떠한 환경도 꿈을 가둘 수는 없다" 고 거듭 강조하고 강연 후에는 자신의 기억 속에 '포항여고'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곳이었던 곳 '수돗가'를 찾기도 했다.
김 의원은 수돗가에서 한 달 여 동안의 포항여고 재학 당시 도시락을 사올 형편이 안 돼 점심시간만 되면 혼자 몰래 수돗가에 와 물로 배를 채웠었다고 회상, 주변을 울렸었다.
35년 늦은 포항여고 제1호 명예졸업장을 받는 김 의원의 이날 명예졸업장 수여식에는 박해자 동창회장, 이귀자 동창회사무국장, 차동찬 전 포항시의원 등 총동창회 임원들과 동기회원들이 참석해 꽃다발을 건네며 함께 축하했다.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