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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찬스

등록일 2023-12-13 18:15 게재일 2023-12-1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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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할매카페는 성업중이었다. 이화회, 매월 두 번째 화요일의 만남은 결성 이후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맛있는 음식과 풍성한 공감의 대화로 화기애애했다. 한 달에 한번 그리운 이 만나 듯 기쁘게 만나지만 단 4시간 정도의 짧은 만남은 항상 아쉬웠다. 하루 말미를 얻어 가까운 경주로 가서 문화산책을 감행한 적도 있었다. 시간을 늘인 만남과 대화는 즐거움이 배가되었다. 한 번 더 도발을 해봐요? 의기투합했다. 여전히 손주들을 돕는 임무가 끝나지 않은 상황인지라 이리저리 잴 것이 많았지만 도모하기로 했다. “이번엔 해외로 뛰죠.” 9월 모임에서 뜻을 모았다. 12월로 멀찌감치 날짜를 잡고 스케줄 조정을 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말을 끼워 날을 잡았다. 어디로 갈까? 너무 먼 곳은 시간이 허락잖고, 가까운 곳은 거의 다 경험한 터였다. 간 곳이라도 또 가면 돼죠. 어디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랑이 중요하다잖아요? 모두들 동의하고 내가 제안했다. 베트남의 하롱베이 크루즈여행 어때요? “제자찬스를 써 볼까요?”

응웬휴비엔은 내게 가장 의미있는 제자다. 재학 내내 센스있고 영특해서 큰 기쁨과 보람을 안겨주었고 탁월한 성적으로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어능력시험 6급도 독학으로 취득했다. 졸업 후 베트남에서 꽤나 탄탄한 중견기업의 영업부장직을 수행 중인, 성공한 제자다. 비엔은 내게 베트남 사랑을 가르쳐주기도 해서 난 한 예닐곱 번 베트남을 여행하거나 방문했다. 그럼 어떠랴? 이화회 멤버와의 여행은 또 특별할 것이었다. 바로 메시지를 넣었고 단번에 환영의 콜이 왔다. 그 자리에서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필요경비를 모았다. 막힘없이 일사천리였다. 베트남의 일정은 바쁜 비엔에게 맡겼다. 옵션은 럭셔리하되 할머니들임을 감안해 너무 고단하지 않게, 센스만점 비엔은 야무진 일정표를 메시지로 보냈다. “사랑하는 이정옥 교수님 베트남 여행 일정”.

제자 찬스는 성공적이었다. 공항에서부터 시작된 특별대우는 여행 내내, 하노이를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덕에 우린 정말 단 한 번도 경험 못한 호사를 누렸다. 최고의 레스토랑, 전망좋은 호텔, 하롱베이 크루즈의 반짝이는 야경, 섬에서 맡는 바람의 향기는 패키지 투어로는 절대 경험 못할 여행이었다. 비 오는 하노이의 격한 환영이라는 비엔의 센스있는 유머까지도 즐거웠다. 그저 우리는 카르페디엠. 현재를 즐겨라.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 거둘 수 있는 행복을 만끽하면 되었다. 여유로운 수다로 웃고 또 웃었다. 웃음소리는 고스란히 사진에 담았다. 골치아픈 정치 얘기도 연예인의 선정적 가십도 우리의 대화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우린 여행 내내 단 한 번도 TV를 켠 적이 없었다.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 우린 또 하나의 동질성을 발견했다. 그 흔한 면세점 쇼핑을 어느 누구도 않는 거였다. 손주들 줄 과자 몇 봉지 살 뿐임에도 더없이 풍성한 여행이었다. 이렇게 품격있는 우리의 여행은 모두 나의 자랑스러운 제자 덕분이었다. 비엔 정말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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