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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한자리서… 위안과 용기 주는 가르침의 산실

등록일 2023-11-01 20:05 게재일 2023-11-0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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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장은재의 명품 노거수와 숲 탐방<br/>① 경주 괘릉리 반려목 소나무 노거수
경주 외동읍 괘릉리에서 만난 소나무.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경주 외동읍 괘릉리에서 만난 소나무.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요즘 아침 산책하다 보면 심심찮게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시민들을 만난다. 다양한 종류의 강아지에서부터 어미 개까지 촐랑거리며 걷기도 하고 뛰면서 주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지만, 때로는 큰 덩치의 험상궂은 불도그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움찔하면서 주춤거리거나 멀찌감치 떨어져 걷게 된다.

반려견 주인은 괜찮다고 하나 그것은 그들의 생각이고 지나는 나는 그렇지 못하다. 더하여 가끔 반려견들이 본 변이 산책길에 그대로 방치되어있는 것을 보면 그리 유쾌하지만 않다. 날이 갈수록 주변을 돌아보아도 그렇고 언론 보도에도 반려동물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반려동물을 키우는데 드는 먹이, 치료 등 그에 따른 경제적 시장도 엄청나게 커져만 간다. 키우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지만, 유기되는 반려동물도 늘어나고 있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 현실이다.

 

몸통 둘레만 10m 제 키와 맞먹는 위용

한 뿌리에서 뻗어 나온 4개의 줄기서

넓게 펼쳐진 가지들은 당집 감싸 안아

솔잎 입에 문 꽈리 튼 붉은 뱀 형상과

굽은 잔가지·하늘의 조화는 ‘예술작’

마을 주민들에겐 신성한 경배의 대상

풍요·안녕 비는 수호신으로 받들어져

반려(伴侶), 사전에서는 동무, 동반자로 표현한다. 사회가 다원화된 만큼 각자의 반려 또한 기호와 사정에 따라 다원화되는 추세다. 나의 반려는 노거수(老巨樹)다. 오래전부터 반려목 노거수를 키우고 있다. 아니 나의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이 더 맞겠다. 내가 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위안과 용기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경주 토함산 자락 외동읍 괘릉리 328번지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소나무이다. 마을 주민들에게는 경배의 대상인 노거수가 내 마음 안 깊숙이 자리한지도 오래 되었다. 마을 주민들에게도 수호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경외하다. 언제 찾아가도 늘 한자리에 머물면서 곧은 절개와 푸름을 자랑한다. 그를 보면 허물어졌던 내 의지도 되살아나고 흔들리는 정의감도 바로 선다. 무언의 가르침, 스승이나 다름없다.

20년 전에 처음 만났다. 지금은 한 개지만 그 당시에는 당집을 2개 가지고 있었다. 뿌리에서 뻗어 나온 힘찬 줄기도 4개나 되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 웅장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푸른 솔가지의 아름다움에 반해 ‘노거수 생태와 문화’ 책 표지 사진으로 사용했다. 그간 이 반려목 소나무 노거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줄곧 용기를 얻었다.

노거수는 몸통의 둘레가 무려 10m이다. 그의 키와 맞먹는다. 나뭇가지는 아래로 늘어 떨어져 땅과 맞닿을 정도이다. 푸른 하늘 공간에 배열한 마디마디 굽은 잔가지의 모습은 예술작품 같고 꽈리를 틀고 있는 뱀처럼 붉은빛을 띠고 푸른 솔잎을 입에 물고 내려다보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그 누구든지 한번 접하면 황홀함에 넋을 잃고 그의 품속으로 빨려들게 된다. 반려목 노거수에 기대어 두 팔로 감싸 안고 얼굴을 갖다 맞댔다. 가을 햇살에 따뜻한 온기가 내 얼굴에 전해 왔다. 숨을 깊게 들어 마시다 뱉곤 했다. 솔향이 혈액을 타고 전신에 퍼졌다. 잡념이 사라지니 마음이 편하다.

생명의 역사 속에서 단일 생명체로 가장 몸집이 크고 오래 사는 생명체는 노거수가 아닐까 싶다.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중심 역할을 함은 물론이다. 주민들은 매년 공동 제사를 지낸다. 마을 수호신을 존중하는 예(禮)다. 동제를 통하여 마을 주민들은 화합과 결속의 동기를 다지는 등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곤 한다. 노거수 생태계가 동민들에게 철학적 사고를 담아내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에게 노거수와 당집이 있는 공간은 신성함의 발로다. 출입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연 그 자체를 신격화하고, 간혹 가지가 부러지거나 자연 고사하더라도 가져가 사용하지 않는다. 방치함으로써 생태적으로 분해자, 생산자, 소비자라는 고리로 자연순환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다. 이는 자연보호 최상의 방법이다. 고서를 들춰보면 우리 조상의 나무 사랑은 그 어느 민족도 따라올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려동물 키우듯이 반려목 노거수를 키워보면 어떨까. 헤르만 헤세는 ‘나무야말로 진리를 말하는 가장 훌륭한 설교자라고 고백하였다.’ 그렇다. 마음이 이끄는 곳, 나만의 노거수를 찾아서 그곳에 머물면서 자연과 동화되어 보자. 자연에 대한 경외감, 평온함, 충만감과 고립감에서 탈출하여 이웃에 대한 유대감, 삶에 대한 애착심 그리고 이 모든 것에 교감하면서 감사의 마음이 몸과 마음속에 스며들고 또 우러나올 것이다. 내 마음속에 안고 있는 고민의 문제도 가을 햇살에 영글어 가는 벼알처럼 알곡으로 변할 터이다.

아프로디테 말고는 ‘이 세상에서 꽃만큼 사랑스러운 것도 식물만큼 소중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인류 삶의 진정한 모체는 이 대지를 뒤덮고 있는 녹색식물이다. 녹색식물이 없다면 우리는 숨 쉬지도 먹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는 나무가 존재함으로써 덩달아 존재하는 작은 생명체일 뿐이기에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나무의 존재를 절대시해야 한다’라고 했다. 나는 식물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기분을 느낀다. 그것은 영적인 충만감에 젖어 있는 식물들의 심미적 진동, 에너지 파동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노거수는 이제 나의 반려목이 되었다.

기독교를 창시한 예수의 말씀을 담은 성경에도 에덴동산에서 금단의 열매를 맺는 나무 이야기를 하였고,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 역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공자 역시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우리 주변 명찰이나 서원에 은행나무와 회화나무가 있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에는 고택마다 노거수가 있다. 거기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승이며 가르침의 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도 나홀로 명품 노거수를 탐방하는 길은 행복하다. 많은 가르침을 받고 또 즐기고 있다. 반려동물처럼 경제적으로 부담도 없고, 여행을 간다고 어디다 맡길 필요도 없다. 반려목 노거수는 자연이 연출하는 사계절의 아름다운 작품을 늘 품고 있어 무상으로 감상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쉽고 가치 있는 일은 없을 듯하다. 인간과 나무와 관련된 모든 것을 산림문화라 부른다. 시나 수필, 소설을 가미시켜 삶의 질을 높여 주는 표현 활동에 대해선 산림 문학이라 나름 정의해본다. 오늘도 나홀로 노거수 생태와 문화를 탐방하면서 거대함, 숭고함,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나무사랑

 

외동읍 괘릉리 328번지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소나무는 나이가 320살쯤 된다. 마을 주민들의 극진한 보살핌과 정성이 엿보인다. 그러나 고령의 이 노거수는 지금 상처가 덧나 안타까움을 더한다. 아예 한줄기는 태풍에 부러진 채 땅에 누워있다. 다른 한 줄기는 반쯤 부러져 다른 동료 줄기 가지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부러진 한 줄기는 생명이 간당간당하면서도 주민이 쥐어준 지팡이에 의존해 끈질긴 생명줄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세파 속에 다소 힘에 부쳤는지 줄기 모두 서쪽을 향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자라고 있다. 자연에 동화된 그 모습을 보니 경이롭기까지 하지만, 노거수는 부러진 몸 줄기 사이사이로 염증을 앓고 있다. 빗물이 스며든 것이 병을 유발한 원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호수나 천연기념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 얼마나 고통이 심할까하는 생각에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내 눈물샘을 자극한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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