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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거래의 딜레마

등록일 2023-06-04 18:16 게재일 2023-06-0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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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 작가
유영희 작가

옳고 그름을 무 자르듯이 딱 자르기 어려운 경우는 많지만, 절약이나 친환경 같은 이슈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옳음의 범위에 속한다. 제리 스피넬리의 ‘돌격대장 쿠간’은 초등 고학년이 읽을 만한 동화책인데도, 그 안에 담긴 주제는 비폭력, 친환경, 성 평등 등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해 옳음이 무엇인지 편안하게 보여주어서 재미있게 읽고 주변에 많이 추천하기도 했다.

주인공 존 쿠간은 언제나 새 옷을 입고 고기를 즐겨 먹으며 특유의 적극적 성격으로 학교에서 ‘핵인싸’다. 그런데 전학 온 펜 웹은 중고 옷만 입고 온 가족이 채식주의자인데 남다른 친화력으로 금세 여자아이들한테도 인기 많은 ‘핵인싸’가 된다. 쿠간은 그런 웹을 싫어하지만 웹이 쿠간의 할아버지를 위해 자기가 너무나 아끼는 흙을 기꺼이 내어주자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그토록 혐오하던 중고 물건을 사며, 백화점 건립 반대 운동에 참여한다. 이 책에는 소비를 반대하는 메시지가 듬뿍 담겨있다.

나 역시 당근마켓이라는 중고 거래 사이트를 자주 이용한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당연히 가장 먼저 들어가 보는 곳이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이 없어도 슬그머니 들어가 본다. 작은집으로 이사하면서 많은 물건을 판매한 곳이기도 하다. 새 것을 살만큼 여유가 없기도 하지만, 내 나름대로는 착한 소비를 한다는 자부심도 조금은 있다. 옷만 가지고 보면, 2019년 기준 생산량은 대략 1천300억 개, 이중에 버려지는 옷이 최소 920만 톤 이상이라고 한다. 그 중 일부는 소각되는 과정에서 대기가 오염되고, 소각하지 못한 옷은 쓰레기 산을 이룬다고 하니, 나 한 사람이라도 중고 옷을 이용하면 옷 생산량이 줄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현실에서는 중고 물품 이용이 정말 옳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나처럼 중고 마켓 물건이 싸다고 쉽게 사다가 물건이 쌓이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고 마켓을 믿고 소비를 많이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경제 유튜버의 말을 빌리면, 사람들이 중고 마켓에 내다 팔 생각에 옷이나 물건을 많이 산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중고 물품을 이용하는 것이 친환경적이거나 절약이라고만 하기는 어렵다. 필요한 것도 없는데 괜히 검색하느라 시간 버리는 것도 문제다.

중고 물건 이용의 또 다른 문제는, 분명히 자기 물건을 샀는데도 중고 마켓에 팔기 위해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책도 마찬가지다. 새 책을 사도 나중에 팔 생각에 마치 빌린 책처럼 밑줄도 못 긋고 메모도 못한다. 이러다 보니, 내 책인데도 읽기가 불편하고 읽은 것 같지 않다. 중고 거래를 위해 물건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기이한 소비 현상이 벌어지니, 중고 물품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질문하게 된다.

옛사람들이 만든 오래된 그릇이나 가구를 보면, 은근한 감동이 밀려온다. 그 정도의 품질은 아니더라도 나만의 물건을 귀하게 여기고 오래 쓰는 것이 환경도 보호하고 삶의 질도 높인다는 오래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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