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미귀가(부분)

등록일 2023-04-27 18:34 게재일 2023-04-28 18면
스크랩버튼
강성은

길을 잃은 것도 아닌데

모르는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아는 골목으로 나온다

골목과 골목 사이

알다가도 모르겠는 시간이 흐르고

 

짐보따리 하나를 든 여자가 잠옷 차림으로

서울역 앞에 서 있다

 

겨울 바람이

한밤중 흰 새들을 마구 떨어뜨린다

 

새들을 밟고 손을 호호 불며

막차를 타려고 사람들이 뛰어간다

위의 시는 “알다가도 모르겠는” 착란의 시공간을 펼쳐낸다. “서울역 앞에”서 “짐보따리 하나를 든” ‘잠옷 차림’ 여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기차를 타려고 집을 나온 몽유병자 같다.(그 여자는 시인 자신을 상징하는 것 아닐까.) ‘겨울 바람’을 맞은 새들이 “마구 떨어”져 지상에 깔리고, 이 “새들을 밟”으며 “막차를 타려고 사람들이 뛰어”가고 있는 모습은 이 세상의 종말을 미리 보여주는 것 같기만 하다. <문학평론가>

이성혁의 열린 시세상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