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시작 전 대기자들로 북새통<br/>대기 100번대·오후까지 마감 일쑤 <br/>소아과 전문의 줄고 환자는 늘어 <br/>진료대란 소아청소년과 대책절실
“지금 소아과는 발 디딜 틈도 없다는 말이 딱 맞아요.”
포항시 북구 양학동에 사는 김모(62)씨 부부는 27일 오전 8시 30분쯤 직장을 다니는 부모를 대신해 3살 된 어린 손자를 안아 들고 소아과 문을 열었다.
병원 진료가 시작되기 30분 전이었지만 그들의 번호는 ‘48번’이었다.
김씨는 “우리는 아이를 입원시키고 싶어 입원실이 있는 이곳까지 왔지만, 요새는 여기뿐만 아니라 일반 동네 소아과도 아침부터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좀 더 일찍 올 걸 그랬다”며 열에 지쳐 기댄 아이의 등을 연신 쓸어내렸다.
또 다른 대기자 직장인 안지영(32·북구 죽도동) 씨도 “출근하기 전 아이 진료를 받기 위해 일찍 왔지만, 오전 접수가 끝났다고 전해들었다”며 “어플로 예약하는 다른 병원은 이미 마감이 끝난 상태라 오후에 반차를 쓰고 다시 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겨울철 독감 환자 증가와 코로나19 재유행이 겹치면서 소아과 방문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소아과 전문의 수는 점점 줄어들어 지역 곳곳에서 ‘소아과 오픈런(Open Run)’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 따르면 2023년 전반기 소아과 전공의 모집 199명 중에서 33명(16.5%)만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 대학병원의 경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자가 0명인 곳이 전국 72%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모들이 소아과 문을 열기 전 미리 와서 번호표를 뽑아도 오후 진료까지 밀리는 일이 다반사다.
이날 오후 1시쯤 오후 진료가 시작되자 대기자 명단 스크린은 아이들의 이름으로 빼곡해졌다.
‘116번’ 번호표를 쥔 김자연(36·북구 죽도동)씨는 “일주일 동안 두 번이나 방문했다. 진료가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라 경과가 나아질 때까지 여러 번 오라고 하니 기다리는 것도 일이다”며 “대기가 길어도 마땅히 갈 병원이 없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포항 지역 육아 인터넷 커뮤니티 카페 등에는 동네 인기 병원의 대기자 현황과 예약 정보,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예약 가능 여부 등 정보를 묻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지역 정보를 공유하는 한 카페에 “알고 있는 소아과는 오전 대기가 100명이라 빨리 갈 수 있는 다른 소아과를 알려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댓글에는 “해당 병원에서 오후 접수를 받고 있는데 지금 72번이라고 하니 얼른 확인해보라”, “오후 2시부터 열 안 나면 바로 진료가 가능한 병원이 있다” 등의 조언이 이어졌다.
앞으로 환절기와 한파 등으로 소아과 오픈런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 예상되면서 부모들의 근심은 더 깊어 가고 있다.
한편,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지난 9일 “인구 17%를 차지하는 소아청소년의 필수진료에 대한 전공의 기피현상이 최악으로 악화하고 있다”며 소아청소년과 진료 인력급감과 진료대란 대비를 위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김민지기자 mangch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