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경주 남산에서 엎어진 채 발견된 ‘열암곡 마애불’을 세우는 논의가 불 붙었다. 열암곡 마애불입상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마애불(磨崖佛) 가운데 가장 완벽한 얼굴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얼굴은 풍화 흔적 하나 없다. 학계는 마애불이 1430년 발생한 지진 때 쓰러졌다고 분석한다.
불상이 암벽에서 떨어졌는데도 부처의 얼굴이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엎어진 불상의 얼굴과 바닥 사이는 5㎝에 불과하다. ‘5㎝의 기적’으로 불린다.
무게 80t의 불상을 세우는 작업은 쉽지 않다. 문화재청도 여러 차례 검토했지만 불상 훼손을 우려, 쉽사리 사업을 추진하지 못했다. 건축계도 난색이다. 마애불이 있는 곳이 급경사로 둘러싸여 중장비 반입이 어렵다. 화강암 재질의 불상은 작은 충격에도 부서질 수 있다.
신임 조계종 총무원장이 마애불을 세우겠다고 나섰다. 마애불 세우기가 탄력받았다. 현 상태 유지는 불상의 안전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학계 의견이 힘이 됐다. 찬성 목소리가 커졌다.
2017년 발생한 진도 5.8의 경주 지진은 마애불 보존 문제를 소환했다. 기술적인 문제는 헬기를 동원, 중장비를 현장 조립해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조계종은 부처님을 바로 세우는 일을 종교를 떠나 민족 얼을 되살리는 일이라며 국민적 관심과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엎드려 있는 마애불을 꼭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까. 학자들 중에는 이론을 거꾸로 뒤집어 보는 이들이 있다. 대한민국 지도를 거꾸로 걸어놓고 세계를 향한 꿈을 키운 이들도 있었다.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기 때문이다. 마애불을 현 상태로 그냥 두고 주변 환경을 가꿔 새로운 형태의 불교 성지를 조성해 오히려 가치를 더 높일 수도 있지 않을까. 열암곡 마애불상은 엎드려 있는 자체로도 그 고결함이 빛을 잃지는 않는다. 오히려 희소성 때문에 그 가치를 더 높이 평가받을 수도 있다.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이 세계적인 명물이 된 것도 기울어진 채 그 건축미를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두오모 대성당의 부속 종탑이지만 기울어진 모습 때문에 대성당 보다 훨씬 유명하다. 1820년 에게해의 밀로스섬에서 발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밀로의 비너스’는 세기의 보물이다. 양팔이 부서지고 없지만 아프로디테 여신의 우아함을 뽐내며 아름다움의 극치로 평가받는다.
우리는 혹여 똑바로 선 것 만이 정상이고 바른 것으로 여기는 경직된 사고로 인해 석불의 진정한 가치를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많은 과학적 성취가 다름과 이유를 찾다가 발견됐다. 그 깨달음이 과학적 성취가 되고 세상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엎어진 채 600년 인고의 세월을 버텨온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현 상태가 더 안전할 지도 모른다. 현 상태로 보존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 될 수가 있다.
엎드려 있는 불상은 그것 대로의 가치가 있다. 바로 세우는 것 만이 능사는 아니다. 지진으로 인해 엎드렸으면 이 또한 부처의 가르침이다. 범인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