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
오랜만에 집들을 벗어나니
길이 탱탱해지고
이른 가을 풀들이 내 머리칼처럼
붉은 흙의 취혼醉魂을 반쯤 벗기고 있구나.
흙의 혼만을 골라 밟고 간다.
길이 속삭인다.
계속 가요,
길은 가고 있어요.
보이는 이 길은 길이 잠시 멈춘 자리일 뿐
길의 암호일 뿐
길은 가고 있어요. (부분)
안주의 장소인 ‘집’일 나와 길에 나서자 “길이 탱탱해지”기 시작한다. 길은 “붉은 흙의 취혼”을 가지고 있다. 무엇인가에 취해 있을 때 삶은 길이 된다는 의미일까. 시인은 취해 있기에 “계속 가요”라는 길의 속삼임을 들을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 길은 보이는 길이 아니다. “보이는 이 길은 길이 잠시 멈춘 자리”이고 “길의 암호일 뿐”이다. 길 자체가 가고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삶은 흐름, 살아가기 자체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