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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북쪽 - 화살기도5

등록일 2022-11-10 19:53 게재일 2022-11-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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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사방이 캄캄해져 있었고 나는 당신을 생각하던 마음을 마당에 내다 놓고 대못에 박히도록 했습니다 나는 흠뻑 젖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왜 까닭 없이 까닭도 없이 그렇게 흥건했던가요 왜 그토록 죽음의 왼손을 부여잡고 있던 것이었을까요

가까운 바다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대못들을 한 움큼씩 삼키고 또 삼켜 한 겹 오래된 소금기를 없앴는지 한 뼘쯤 맑아져 있었습니다

벗어 놓고 간 치맛자락이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듯 뻐꾸기가 또 웁니다

내일 아침 내가 나가면 이 섬도 무인도가 됩니다

당분간 나는 무진 애를 쓰며 멍하니 있으려 합니다 (부분)

고독한 무인도의 풍경이 시인의 마음을 그립고 슬픈 기억으로 인도한다. 비 내리는 풍경이 가져온 ‘젖음’의 쓸쓸하고 매혹적인 이미지는 죽음으로 빠져들었던 연인을 환기시키고, 시인을 둘러싼 모든 자연 현상들은 시인의 절절한 추억과 점차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시인은 무인도 자체가 되어가는 듯하다. 추억의 끝을 통과했을 때 나타나는 섬, 무인도. 이 섬이 됨으로써 그는 어떤 무의 상태로 이행한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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