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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

등록일 2022-11-06 19:38 게재일 2022-11-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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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불빛은 먼 데 있는 불빛은 흔들린다 깜빡인다 부들부들 떤다

불빛은, 가까이선 흔들리지 않는다 노란 불티 그대로다

먼 데 있는 불빛이 흔들리는 건 먼 데 있어서 위험하기 때문일까

가까이선 하지 못할 표현을 조심스레 하는 걸까

 

먼 데 있는 불빛은 비로소 입술을 벌리고 희미한 소리를 낸다

울음도 노래도 아닌 소리의 파닥거림, 멀어져 가는 것들은

저마다 자기 표현을 한다. 가까이선 엄두도 못 냈을 표현을

불빛은 멀리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입을 연다. 멀리 있음으로 해서 불빛은 더욱 절실하다. 왜냐하면 불빛은 멀리 있을 때 더욱 깜빡거리며 흔들리기 때문이다. 시인에게서 멀어져 가는 저 불빛은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엄두도 못 냈을”) 삶과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부들부들 떨며 표현한다. 촛불은 멀어져가기에 희미해지지만, 그것의 소리는 더욱 뚜렷해지고, 가슴은 아파만 간다. 이별의 현상학을 보여주는 시.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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