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기
밥상처럼 잘 닦여진 마당을 가로질러
계단 앞에 섰네
꽃잎 같은 비구니들
눈썹 그리듯 비질한 자국 위에 찍히는
발자국 가만히 돌아보다가
문득 발자국 지우고 싶었네
지붕을 타고서 휘돌아온 바람이
물고기의 몸 흔들 때마다
얇아질 대로 얇아진 몸
추녀 끝에서 펄럭이던,
하지만 방향도 없이
찰랑 차르르 바람 속을 헤엄쳐 나가는
물고기의 몸 이미 있어도 없는
소리뿐인 몸이었네
계단 끝 텅 빈 마루방 하나,
이른 새벽 바람이 씻어내고 있었네
정적 속에서 나는 ‘차르르’ 소리는 바람에 의해 목어가 흔들리고 헤엄친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에 시인은, 우리 몸은 ‘헤엄침-흔들림’만이 그 실상임을 깨닫는다. 바람에 깎이고 휘둘려 “얇아질 대로 얇아”진 목어의 몸처럼. 나아가 시인은 그 몸이 소리로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존재와 무가 뒤얽혀 있음을 인식한다. 시간이 소멸한 정적 속에서 들려온 목어 소리가 존재의 비밀로 시인을 이끌었던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