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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오어, 농담 같은 화두가 있는 천년 고찰

등록일 2022-10-31 19:05 게재일 2022-11-01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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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포항 &lt;13&gt;<br/>운제산과 오어사
운제산과 대왕암.

형산강 이남의 진산(鎭山)인 운제산(雲梯山)에 오어사(吾魚寺)라는 절이 있다. ‘나의 고기’라는 뜻이니 절 이름치고는 좀 생뚱맞다.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오어사는 보경사와 함께 포항을 대표하는 절이다.

이 절의 원래 명칭은 항사사(恒沙寺)인데, 불경에 나오는 항하사(恒河沙)의 준말이다. 항하(恒河)는 인도 갠지스강을 가리킨다.

즉 항하사는 갠지스강의 모래알처럼 무수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절에서 많은 수행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그렇다면 항하사는 어떻게 오어사가 되었을까?

운제산과 오어사를 이해하려면 ‘삼국유사’를 살펴보아야 한다. 운제산과 오어사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오어사에서 수행한 고승들이 ‘삼국유사’의 여러 대목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오어사의 명칭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그(혜공)는 늘그막에 항사사로 옮겨 살았다. 이때 원효는 여러 불경의 소(疎)를 지으면서 항상 혜공을 찾아가 의심나는 것을 물었는데, 가끔씩 서로 말장난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원효와 혜공이 시냇가에서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고 물 위에 대변을 보았는데, 혜공이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가 눈 똥은 내 물고기다.” 그래서 오어사라고 이름 지었다.

-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민음사, 2008, 443∼444쪽.

“자네가 눈 똥은 내 물고기다”의 원문은 “여시오어(汝屎吾魚)”다. 그래서 “너(원효)는 똥을 누었고 나(혜공)는 고기를 누었다”라고도 풀이할 수 있다. 어느 쪽으로 풀이하든 “너 원효는 아직 멀었다”는 뜻이다. ‘항사’가 불가(佛家)의 전형적인 표현이라면 ‘오어’는 파격적인, 유쾌한 농담조다. 오어사의 명칭을 두고 다른 이야기도 전하지만 결국은 ‘여시어오’로 귀결된다. 가벼운 농담에 깊은 가르침, 곧 화두가 담겨 있는 것이다.

 

운제산에 위치한 나의 고기 뜻의 ‘오어사’

원래 명칭은 ‘항사사’로 삼국유사도 등장

대표 유물에는 대웅전 원효대사 삿갓 등

자장암 앞에 서면 오어사의 정취 한눈에

구름 사다리로 절벽을 오고 갔다는 ‘운제산’

오어사를 감싸고 있는 능선 따라 굽이굽이

정상 해발 482m로 포항의 남쪽 산 중 최고

주민들, 가뭄땐 대왕암 올라 기우제도 지내

 

시가 있는 신라 4대 조사(祖師)의 수행처

오어사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절 이름 가운데 몇 안 되는 현존하는 절이며, 신라의 4대 조사(祖師)인 원효(元曉, 617∼686)와 자장(慈藏, 590∼658), 혜공(惠空), 의상(義湘, 625∼702)이 수행처로 삼았을 정도로 유서 깊은 절이다.

오어사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어사에 가려면 포항에서 한참 놀아야 한다고 권하는 시인이 있다.

 

오어사에 가려면

포항에서 한참 놀아야 한다.

원효가 친구들과 천렵하며 즐기던 절에 곧장 가다니?

바보같이 녹슨 바다도 보고

화물선들이 자신의 내장을 꺼내는 동안

해물잡탕도 먹어야 한다.

- 황동규 ‘오어사에 가서 원효를 만나다’ 부분

그렇게 포항 분위기를 느끼며 시내를 헤매며 놀다가 “포항서 육십 리 길, 말끔히 포장되어” 있는 길을 달려가면 “오른편에 운제산이 나타나고 / 오어지를 끼고 돌아 / 오어사로 다가간다.” 그렇게 “원효 없는 원효 절”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가만!

호수 가득

거꾸로 박혀 있는 운제산 큰 뻥대

정신 놓고 바라본다

아, 이런 절이!

누가 귓가에 속삭인다.

모든 걸 한번은 거꾸로 놓고 보아라.

뒤집어놓고 보아라.

오어사면 어떻고 어오사면 어떤가?

혹 절이 아니면?

머리 쳐들면 또 깊은 뻥대

- 황동규 앞의 시 부분

시에서 ‘뻥대’는 ‘절벽’을 뜻하는 사투리다. 시인은 1400여 년 전에 지은 오어사에서 “모든 걸 한번은 거꾸로 놓고 보아라. / 뒤집어놓고 보아라”는 청(請)을 듣는다. 이 청은 시의 존재 이유이자 불가의 가르침이다.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뒤집어놓고 보는 것이 시의 본질이고, 불가의 가르침인 것이다. 시(詩) 자체가 언어(言)의 사원(寺)이므로 시와 불가의 깨달음이 하나의 맥락임을 시인은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그런 까닭에 “오어사면 어떻고 어오사면 어떤가?”라는 구절도 자연스럽게 와 닿는다.

 

사뭇 다른 분위기의 자장암과 원효암

오어사 대웅전은 영조 17년(1741)에 중건되었고, 그 외 당우(堂宇)들은 대부분 근래에 들어섰다. 오어사의 대표 유물로는 대웅전에 있는 원효대사 삿갓이 있다.

오어사 경내에는 자장과 원효가 수행하던 암자가 있다. 자장이 머물렀던 암자의 근처에는 혜공의 수행처가 있었으며, 서쪽 봉우리에는 의상의 수행처가 있었다고 전한다.

자장암은 ‘삼국유사’에 “낭떠러지로 가서 바위에 기대어 집을 만들었다”라고 했듯이 해발 600미터 기암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다. 오어사의 정취를 한껏 느끼려면 자장암 앞에 서봐야 한다. 오어사 경내는 물론 운제산의 아득한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른 아침이나 인적이 드문 시간에 자장암 앞에 서보면 자장이 왜 이 가파른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었을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대웅전에서 서쪽으로 오어지(吾魚池)를 건너 야트막한 산길을 500미터 정도 걸어가면 원효암이 나온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길을 올라가야 하는 자장암에 비하면 한결 수월한 길이다.

원효암은 운제산의 부드러운 능선에 둘러싸여 찾는 이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

원효암 툇마루에 앉아 마당에 서 있는 감나무를 바라보며 원효는 여기서 무슨 화두를 들고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오어사 대웅전에서 바라본 자장암.
오어사 대웅전에서 바라본 자장암.

운제산과 대왕암 명칭의 유래

오어사를 감싸고 있는 운제산은 정상이 해발 482m로 형산강 너머 포항 남쪽의 산 중 가장 높다. 산의 능선은 구룡포 방향과 경주 무장산(鍪藏山) 방향으로 이어진다. 혜공 등 신라의 4대 조사는 억새 군락으로 유명한 무장산 쪽에서 운제산으로 오고 갔을 것이다.

운제산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원효와 혜공이 또다시 등장한다. 원효와 혜공이 머물던 암자 사이에 기암절벽이 있어 구름(雲)으로 사다리(梯)를 놓고 서로 오고 갔다고 해서 운제산이라 했다는 것이다. 신라 남해왕(南解王)의 비(妃)인 운제부인의 성모단(聖母壇)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나온다.

남해거서간(南解居西干)은 차차웅(次次雄)이라고도 한다. 이는 존장(尊長)을 일컫는 말인데 오직 이 왕만을 차차웅이라고 불렀다. 아버지는 혁거세고 어머니는 알영부인이다. 비는 운제부인(雲帝夫人, 운제(雲梯)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영일현(迎日縣) 서쪽에 운제산(雲梯山) 성모(聖母)가 있어 가뭄에 비를 빌면 응험이 있다고 한다)이다.

-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위의 책, 62쪽.

오어사는 그리 크지 않은 절이지만 구석구석에 이야기의 그물망이 펼쳐져 있어 신라판 판타지를 보는 듯한 느낌에 휩싸인다. 그럴듯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이 이야기를 누가 지어낸 것일까. 오어사 경내를 걷다 보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서사적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운제산 정상에 있는 대왕암이라는 큰 바위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가뭄이 들면 운제산 인근 주민들이 대왕암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박혁거세의 비(妃)인 알령부인(閼英夫人)의 수호신이라는 전설이 있는가 하면, 영일만이 만들어진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옛날 왜국의 한 역사(力士)가 왜국의 모든 장사를 굴복시킨 후 한반도로 건너와 힘센 자가 있다는 소문만 들으면 달려가 모두 물리쳤다. 그러다가 운제산 대왕암에서 창해역사(滄海力士)를 만나 운제산이 뿌리째 흔들릴 정도의 격투가 벌어졌다. 결국 왜국의 역사가 뒤로 넘어지면서 손을 짚었는데, 그곳이 움푹 꺼지면서 바닷물이 밀려와 영일만이 되었다고 한다. ‘포항시사(하), 1999, 772쪽 참조’

오어지라는 저수지를 지나칠 수 없다. 39만6694제곱미터(약 12만 평)에 이르는 오어지는 1961년 정부에서 오어사 아래쪽 계곡을 막아 조성한 농업용 저수지다. 오어지 주변에는 7킬로미터에 이르는 둘레길이 이어지는데, 잔잔한 저수지에 산 그림자가 비치는 것을 바라보며 쉬엄쉬엄 걸을 수 있는 이색적인 길이다.

오어사는 오어지, 운제산과 어우러져 비경을 빚어내고 왠지 모를 신비감을 일으킨다. 여시오어, 농담 같은 화두가 성성(惺惺)한 오어사에서 인생의 화두 하나쯤 품어보는 것은 어떨까.

글 : 김도형 작가, 사진 : 김훈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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