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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중일기

등록일 2022-10-27 18:32 게재일 2022-10-2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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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

부음 소식에

눈에 덮인 젖가슴이 다시 한껏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식구가 늘 때마다

가슴이 파헤쳐지고 겨드랑이

솜털이 날리고 구름이 만장처럼 떠 있다

 

사람들이 떠나고 해 질 무렵이면

가슴이 부스럭거리기 시작한다

늘어진 배를 발로 찬다거나

꼬물꼬물 젖을 빨며 한 삶을 준비하는 봉분은 빵빵하다

하루의 노역이 힘에 부친 듯

주둥이를 땅속에 묻고

꿈쩍도 하지 않는 산

발아래 얼음장 밑 실개울 물은

말없이 흘러간다

 

갓 태어난 몸이 저 물길 따라

새 세상으로 들어가는

봉긋한 숨소리에 산은 모로 돌아눕는다(부분)

 

이승에서의 삶은 죽어 봉분 속으로 수축되지만, 그 ‘죽음-삶’은 뒷산의 젖을 빨면서 재생하여 다른 삶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 삶의 조짐을 보여주는 사물이 뒷산의 “가슴이 파헤쳐지”면서 날리는 “겨드랑이 솜털”이다. 이 솜털은 ‘새로운 삶’으로 승화하고자 하는 봉분 속 주검의 소망에 의해 날리게 되는 것일 터, 그 새로운 삶이란 “발아래 얼음장 밑 실개울”의 물길 따라 들어가는 “새 세상”에서의 삶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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