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홍철
경찰 조사실에서도, 법정에서도
직업을 물으면 ‘시인’이라고 답한다.
그러면 꼭 다시 물어본다.
그러고는 “아…” 하고, 복잡미묘한 표정.
주머니 속에 감춰 둔
은사시나무잎 삐라를 만지작거린다.
수첩에는 바랭이풀과 엉겅퀴를 이용한
사제폭탄 제조법, 아직은 실험 단계임.
심문관이 무슨 생각을 하든,
스스로 더 당당하려면
진짜 시를 열심히 써야 하는데
사발통문 같은 오월의
하늘을 올려다보면
다른 건 다 시시하다.
다만 시적으로 살다가
시적으로 죽고 싶을 뿐.(부분)
변홍철 시인은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밀양과 청도에서 현지 주민들과 함께 투쟁했던 이다. 그에게 ‘시인’은 투쟁하는 자이며, ‘시적인 것’은 권력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저항에서 발현된다. 그의 투쟁의 무기는 ‘은사시나무잎 삐라’와 ‘바랭이풀과 엉겅퀴’로 만든 ‘사제폭탄’, 즉 시다. 풀들로 이루어진 시는 ‘오월의 하늘’처럼 저항을 촉구하는 ‘사발통문’이 되어 시적 투쟁을 불러일으킬 것이기에.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