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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 사각지대 “우리도 봐 달라”

이부용기자
등록일 2022-09-07 20:24 게재일 2022-09-08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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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주차장 침수 인근 상가<br/>인명 피해에 도움 요청도 못해 <br/>철저한 무관심… 상인들 ‘절규’
“초토화 된 현장을 보고 펑펑 울었습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폭우처럼 상인들도 눈물을 쏟았다. ‘우리도 봐 달라’고 소리없는 아우성을 질러댔다.

낮은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재난 복구 모습이 연출됐다.

한곳에선 소방·경찰 등 인력 수십 명과 배수펌프 등 장비 29대가 동원돼 배수 작업 및 구조 작업을 진행 중이었지만 한곳은 또 달랐다. 철저한 무관심이었다. 재난 복구 사각지대다.

7일 전날 태풍 힌남노로 지하주차장이 침수된 포항 한 아파트 인근 상가들의 상인들은 말없이 침수된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뻘밭이 된 바닥은 치울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가게 앞에 식기, 전자제품 등 살림살이들이 온전하지 못한 형태로 나와 있을 뿐이었다. 흙탕물에 잠겨 고장이 난 냉장고를 열심히 닦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만 했다.

피아노학원을 운영한다는 최숙남(52·여) 씨는 “그래도 닦아본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쉽다. 그러나 돈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학생들의 추억이 물에 잠겼다”며 젖은 교재들을 슬픈 눈으로 바라봤다. 이어 “바로 옆 아파트에서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나서 우리는 도와달란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이해는 하지만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 더 힘들다”며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 복구가 될 지 모르겠다. 힘을 내서 일어서야 하는데….”라며 말을 잊지 못했다.

옆 가게 세탁소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거처로도 사용하고 있어 피해가 더 컸다. 쌀과 콩에는 모두 흙이 섞여 먹을 수도 없다.

세탁소 주인 박영희(64·여) 씨는 “세탁기, 건조기, 미싱기 등 모두 사용할 수가 없다. 흙물에 잠긴 옷은 세탁이 안 돼 방법이 없다. 손님 옷들인데 모두 배상해야 할 판”이라며 “이 곳에서 25년 째 운영했지만 가게를 접어야 하나 생각 중이다. 죽으라는 말인가”라며 반문했다.

상인들을 도우러 온 시민 A씨는 “시 관계자나 기초 의원 등 아무도 상가를 들여다 보지 않고 있다. 선거 때만 표심을 외치고 정작 필요할 때는 외면하고 있다”며 분노했다. 또 “정부 관계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이 온다고 의전에만 온통 신경쓰고 있는 모습이 화가 난다. 방문 시간도 한 시간을 훌쩍 넘겨서 왔다. 어이가 없다”고 했다.

김은숙 포항남부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 연합회장은 “장기, 구룡포, 오천, 동해, 대송 등 남구 지역에 물난리가 안 난 곳이 없다”며 “1천여 명의 의용소방대원들이 식기 세척과 청소, 옷 분리 수거 등을 병행하고 가구 등을 옮기고 있다. 마을을 위해 도움이 필요한 곳에 찾아간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을 위로한 건 정치인도, 정부 관계자도 아니었다. 묵묵히 조용한 곳에서 일손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의 진실한 태도였다.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남은 것은 결국 상처뿐인 민심이었다.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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