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러냐? 로봇 관리사가 힘들어? 우리 회사에서 영업이나 뭐 그런 거 할래? 내가 취직시켜줄게. 지금이라도 차 돌려서 올라가자. 너 이렇게 한 번 발들이면 못 돌아온다. 너 지금 네 목소리가 떨리는 것 느끼지? 그거 오랜만에 담배 피워서 그런 것 아니야.
우현이 앞좌석으로 고개를 내밀며 녀석에게 말했다. 녀석은 힐끗 우현을 한 번 돌아보았다.
-저 인조인간을 차에 태울 때 벌써 발을 들인 거야. 저 인조인간 나 알아. 이미 돌아가긴 글렀어. 아, 몰라. 이미 우리는 직진이야. 직진. 이 길밖엔 없어 그러니 네가 나 좀 도와줘야겠다. 너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고.
-거기에 왜 나를 가져다 붙여. 나 물건 네 개 정도 없다고 사는 게 힘들어 지거나 그러지 않아. 이런 경우 말고도 물건은 널렸어. 도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거냐? 어? 이런 게 내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우현이 앞좌석을 잡아당겼다 놓으며 흔들었다.
-그게 꼭 인공 장기만의 문제는 아니야. 잘 봐. 누군지 알겠어? 하긴 네가 얼굴을 보고 누군지 알기는 힘들겠지. 기억 나냐? 올더앤베러 최 회장이라고. 안나를 마이걸로 만든 늙은이. 내가 처음 너에게 말했을 때 네가 찾아가 죽여 버릴 거라고 했었잖아. 그 늙은이야. 팔십 일곱 살짜리. 그때 네가 이야기했었지. 니들 둘 사이에 있었던 일들. 안나가 나에게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 내가 물었었잖아? 진짜로 죽일 수 있냐고.
안나가 고등학생이었을 무렵 우현은 대학생이었다. 전공 과제를 하느라 노마의 집에 들렀던 우현이 안나를 보았다. 교복을 입은 안나가 아니라 평상복을 입은 안나는 우현에게 학생이 아니라 여자였다. 우현은 안나를 마음에 품었다. 핑계거리만 생기면 노마의 집을 찾아왔다. 과제 때문일 경우도 있었고, 그저 놀기 위해 온 날도 있었다. 저녁밥을 얻어먹고 안나가 귀가하는 늦은 시간까지 기다렸다. 노마와 같이 거실에 앉아 있는 우현이 안나에게는 낯설지 않았다. 가끔은 노마와 우현, 안나가 섞여 같이 주말을 보내기도 했다.
곁눈질로 안나를 보기 시작했던 우현이 안나의 얼굴을 마주하는데 익숙해질 즈음, 셋이서 새로 나온 영화를 보러 갔다.
-남매가 영화 보러 가는데 내가 왜 끼어?
-얘랑 둘이서 가면 무조건 싸워. 다른 사람 한 명 있어야 돼.
노마가 한 번 더 권했다.
-같이 가요. 오빠.
안나까지 나서서 잡아끌자 못 이긴 척 따라나섰다. 안나를 중심으로 노마와 우현이 좌우로 나누어 앉았다. 영화를 보던 중 노마가 화장실에 갔다. 안나가 우현에게 귓속말을 했다.
-우현 오빠, 겁쟁이구나.
잠시 후 우현은 안나의 손을 잡았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영화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안나의 손이 무척 부드러웠다는 것. 우현이 안나의 손을 움켜쥐자 안나가 우현의 손을 풀고 다시 깍지를 끼었다는 것만 기억했다. 영화가 끝나고 들렀던 카페에서도 안나의 눈은 우현을 향했다.
집으로 돌아와 노마와 우현은 맥주를 마셨다.
-내가 마실 것은 없잖아.
안나가 노마에게 말했다. 노마가 음료수를 사러 간 사이 안나와 우현은 첫 키스를 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너를 좋아했어.
우현이 안나에게 고백을 했다.
-알고 있었어요.
안나는 우현의 입술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며칠 후 우현은 차를 빌렸다. 안나의 학교 정문 앞에서 안나를 기다렸다. 지나가는 길에 생각이 났고 마침 하교 시간이라 그저 한 번 기다려보았다는 우현의 변명을 들으며 안나가 웃었다.
-오빠, 저 보러 왔다고 말해도 돼요.
우현은 안나의 집 근처 골목에 차를 세웠다. 트렁크를 열어 준비했던 꽃다발과 편지를 안나에게 건넸다.
-정식으로 고백을 하고 싶었어. 안나. 너를 좋아해. 안나, 네가 대학생이 되면 너의 남자 친구가 되고 싶어.
우현이 수줍게 고백을 했다. 안나가 대답했다.
-오빤 벌써 내 남자 친구인걸요.
안나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우현은 인공 장기 회사에 취직을 했다. 번듯한 직장을 가진 남자 친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았다. 동급생 남자들이 밥과 커피를 사줄 때 우현은 여행을 같이 갈 수 있었고 남자 선배들이 영화를 보여줄 때 우현은 뮤지컬 표를 들고 나타났다. 안나가 졸업을 하면 안나의 부모와 노마에게 정식으로 말할 생각이었다. 안나와 결혼 하겠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우현은 그날을 상상하며 혼자 연습을 하곤 했다.
사건이 터졌다. 리베이트 사건이었다. 우현의 회사는 인공 장기를 공급하면서 거래가격의 십오 퍼센트 정도를 담당 의사에게 현금으로 되돌려 주었다. 불법이었지만 익숙한 관행이었다. 의사들은 의례히 받는 것이라 여겼고, 회사는 어차피 들어가는 마케팅 비용이라 여겼다. 주는 쪽, 이를테면 영업사원들이 퇴사하면서 리베이트 장부를 가지고 회사를 협박한다거나, 협박하다 여의치 않으면 경찰에 투서를 한다거나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출발점이 달랐다. 리베이트를 주는 쪽이 아니라 받는 쪽에서 문제가 생겼다. 한 종합 병원의 이식 외과에 제공한 리베이트를 그 과의 과장이 혼자서 유용을 했다. 과에 속해 있던 의사들이 공정한 분배를 요구했다. 과장은 과 전체의 이름으로 들어온 것이니 과장이 알아서 관리하겠다며 맞섰다. 언쟁과 날카로운 신경전이 반복되던 중 회식 자리에서 서로에게 술잔을 던졌고 주먹다짐을 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고 술이 깨지 않은 한 의사의 입에서 리베이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폭력 사건에서 리베이트 사건으로 바뀌었다. /김강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