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기업·친시장’ 정책을 표방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수도권 규제완화가 브레이크 장치 없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140건의 각종 규제혁신 사례를 발표하면서 ‘풀 수 있는 것은 다 푼다’고 밝혀 기업유치에 올인하고 있는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달 20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인천에서 연 ‘산업입지 규제개선을 위한 기업간담회’에서도 비수도권 지자체의 기업유치에 찬물을 끼얹는 내용이 발표됐다.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해 수도권 내 공장 신·증설과 관련한 규제를 풀겠다는 내용이다. 관련 시행령이 개정되면 해외에 나가있는 ‘유(U)턴 기업’의 수도권 경제자유구역 내 공장 신·증설이 허용된다. 지금까지 인천, 경기 등 수도권 경제자유구역에는 외국인 투자기업만 공장 신·증설이 가능했다. 정부 발표 이후 비수도권 시민단체들은 공동으로 규탄성명서를 내고 “수도권의 초집중과 난개발을 부추기며 비수도권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조치”라며 맹비난했다.
윤석열 정부는 대구·경북을 비롯해 비수도권 지자체들이 그나마 기대를 걸 수 있는 유턴기업 유치에 총력을 쏟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3년에 ‘해외진출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유턴기업법)’을 제정해 비수도권 지자체의 유턴기업 유치활동을 지원해 오고 있다. 대구·경북의 경우 그동안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와 상공회의소, 한국산업단지공단의 협조를 받아 유턴기업 유치에 전력을 쏟았다. 지난해에는 대구·경북에서 6개의 유수한 유턴기업을 유치하는 성과도 냈다. 해외 진출기업의 국내복귀 통계를 공식 집계한 2014년 이후 누적 유턴기업은 모두 108곳으로 이 가운데 대구는 5곳, 경북은 14곳이다. 최근에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서 공급망 불안이 커지고 인건비가 많이 올라 외국에 차렸던 공장을 국내로 다시 들여오는 기업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정부가 더 잘 알겠지만, 우리나라의 수도권 집중도는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결코 나타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모든 자원이 수도권에 몰림으로써 나타나는 부작용은 당연히 비수도권 소멸이다. 현 정부처럼 효율성을 잣대로 기업의 수도권 공장 신·증설을 마구 허용하면 비수도권 지자체의 기업유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반도체 산업 투자·인력 양성 계획도 수도권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정책판단 과정에서 ‘국토균형발전’ 보다는 ‘효율성’에 집중하는 것 같다. 효율성만을 따지면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현상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지역균형발전은 국가생존의 문제”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지역균형발전의 최우선 조건은 수도권에 편중된 일자리와 인력을 비수도권 지역에 골고루 퍼지도록 하는 것이다. 비수도권지역에 우수한 기업과 인재들이 찾는 대학이 들어서면 청년들이 가족을 등지고 수도권으로 떠날 이유가 없다.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수도권 규제완화를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지역균형발전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