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갑자 중 열세 번째에 해당하는 병자(丙子)다. 천간(天干)은 병화(丙火)요, 지지(地支)는 자수(子水)다. 계절로는 병(丙)은 5월 더운 여름이고, 자(子)는 12월 추운 겨울이다. 추운 겨울에 호수나 바다 위에 떠있는 태양이다.
병자일주(丙子日柱)는 음기가 가장 강할 때이므로 태양이 자기의 뜻을 펼치기가 사실 쉽지 않을 환경이다. 매사에 조심스럽고 차분한 것이 특징이며, 태양이 떠오르는 기운처럼 기회가 왔을 때 성취할 수 있게 스스로를 단련하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이 곤란을 당하게 되면 인덕이 있어서 구호의 손길이 저절로 온다고 한다. 반면에 성격적으로 조금 불안정하여 엄청스럽게 정(情)이 많기 때문에 누구를 좋아하면 푹 빠지는 경향이 있고, 아니다 싶으면 남의 등에 칼을 꽂듯이 돌아서는 기질이 있다. 병화(丙火)는 대체적으로 외모가 수려하고 잘 생긴 사람이 많고, 친절하고 사교성이 좋아 인복이 따르는 경향이 있다.
자수(子水)와 병화(丙火)는 서로 상극(相克)을 하고 있다. 적은 양의 물은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증발되기 십상이며, 많은 물은 불을 끄기도 한다. 물과 불은 서로의 영역과 성질이 다르며, 서로 대립되고 쉽게 섞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외부의 조건에 의해 서로 합화(合化)될 수가 있다.
“서로 반대되는 것은 하나다”라고 주장한 중세 독일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니콜라우스 쿠자누스(1401∼1464)는 반대물의 일치를 창안했다. 즉 반대되는 모든 것들은 하나에서 나와서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과정에 있으므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있는 것과 없는 것, 삶과 죽음, 선하고 악한 것, 아름답고 추한 것, 귀하고 천한 것’ 등이 그렇다는 것이다. 대립된 양극단이 하나로 일치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대구 태생인 현진건(1900∼1943) 작가의 ‘운수 좋은 날’은 1920년대를 배경으로 김첨지라는 평범한 인물을 통해 하층민의 비극적인 삶을 그려내고 있다. 인력거꾼 김첨지는 아픈 아내가 오늘 하루만 나가지 말아 달라는 간청에도 일하러 나갔다. 며칠 전에 보리죽을 끓여 먹기도 어려운 처지에 설렁탕을 사달라고 해서 야단쳤던 적이 있었다. 오늘은 비까지 내리는 날이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나 운수가 좋다. 이 손님이 내리면 그 손님이, 그 손님이 내리면 저 손님이 타는 것이다. 더욱이 인력거요금에 시비하는 손님도 없었다. 그냥 달라는 대로였다. 그는 행복했다. 이제 아내에게는 설렁탕을, 그리고 젖배를 곯은 세 살 배기 아기에게는 죽을 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의 운수는 계속 이어졌다. 일말의 불안을 한잔 술로 떨치며 설렁탕 한 그릇까지 사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아내는 집에 죽어 있었고, 어린 아들이 엄마의 빈 젖을 빨고 있었다.
같은 날,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동시에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면 동시에 일어난 날은 좋은 날인가, 아니면 나쁜 날인가? 재수 좋게 돈을 많이 벌었다는 입장에서 보면 좋은 날이고, 아내가 죽었다는 현실에서는 나쁜 날인 것이다. 그렇지만 삶은 문제의 연속이며 살아가는 것은 그러한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이다. 사람은 태어난 환경과 유전적 자질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주팔자의 틀 속에서 벗어나서 행복을 추구하는 의지가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희미하게나마 우리는 쿠자누스적 운명의 발길을 예감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지극히 아름다운 것 앞에서 절로 눈물이 솟고, 진정 행복한 순간에 우리는 불안해진다. 삶이 몹시 즐거울 때 참으로 죽음이 두려워지고 만남의 기쁨에 황홀해 있는 순간 이별의 슬픔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지지(地支) 자(子)는 아들 자(子)자 답게 왜소하며 양지바른 담벼락 아래서 놀이에 열중하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또한 쥐의 형태로 쥐 서(鼠)이며 야행성으로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고, 주로 은밀한 곳에 숨어서 살고, 숨어다닌다. 병자일주(丙子日柱)의 자(子)는 예의바르고 책임감이 강하며 스스로 통제하여 이치에 벗어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왕성한 번식력 덕분에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인내심과 지속력과 생활력이 강하고, 먹이를 모아놓는 습성 때문에 숨겨놓은 재산이 많을 수 있다.
가정생활을 잘 꾸려나가는 데는 재산이 필요하다. 재산은 가정의 일부이고, 재산을 획득하는 기술은 가정을 운영하는 기술이다. 생활필수품이 마련되지 않으면 잘살기는커녕 사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자연이 어떤 것도 불완전하거나 쓸데없이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면,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서다. 예를 들어 양털은 옷감을 짜는 사람에게 천을 만드는 원료가 되는 것이다. 또한 사냥도 재산 획득 기술의 일부이며 어떤 의미에서 전쟁 기술도 재산 획득 기술의 일종인 것이다. 그리고 재산이나 부가 본성적으로 생활필수품을 마련하기 위한 획득 기술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이다.
1636년 병자년(丙子年) 12월에 일어난 병자호란으로 인해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는 충절을 기억하지만 청나라 심양에 인질로 끌려간 약 40만 명의 백성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눈물의 세월은 기억하지 않는다. 특히 조선으로 돌아온 여자들을 ‘환향녀(還鄕女)’란 이름으로 정죄하였다.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이 있다. 즉 좋은 일에는 방해가 많이 따른다거나, 좋은 일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과거에 의미 없이 한 말과 행동의 결과가 현재의 인과로 드러나는 법이다. 그래서 생각하는 힘과 기다리는 힘, 인내하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청정한 세상인 정토(淨土)가 아닌 괴로움으로 가득찬 세상인 예토(穢土)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최상의 날을 경계하고, 운수좋은 날을 조심해야 한다. 후회스러운 그날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