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연
새 한 마리 전봇줄 위에 앉았더니
허공에 길을 만들며 숲으로 사라졌다
새가 날아간 숲에는
자작나무 그림자 흔들리고
마른풀들이 새가 날아간 방향으로 몸을 누인다
멀리서 보면 고요한 산속
더러 파다한 세상이
갈대로 출렁이며 일어선다
무거운 짐 부려놓듯 나뭇잎이 떨어지고
벗어버릴수록 가벼워지는 생
숲에서 길을 만난다
새 한 마리가 날아간다. 그러자 정적에 싸여 있던 세상이 “갈대로 출렁이며 일어”서고, “자작나무 그림자 흔들리”며, “새가 날아간 방향으로” “마른풀들이” 몸을 누인다. 새의 비상은 “무거운 짐 부려놓듯” 떨어지는 나뭇잎의 추락과 상통한다. 그 비상은 존재자들의 “벗어버릴수록 가벼워지는 생”을 드러내기에. 하여 허공을 나는 저 새가 그린 궤적에서, 시인은 자신의 생이 나아갈 길-소멸로 향한-을 발견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