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환
내가 나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네
오른손으로 쓰고 왼손으로 받았네
뜯지도 않고 불살랐던
불 꺼진 창문, 떠나온 그 주소에는
이제 누가 살고 있을까,
뜨내기들은
헐렁한 외투와 낡은 구두뿐이지만
허허벌판을 첩첩 살아가네
내 왼손이 오른손을 잡아
피가 흐르네
나는 여전히 오래된 여행이라네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그런데 오른손이 쓴 그 편지를 왼손이 “뜯지도 않고 불살랐”다고 하니, 그 편지에는 기억하면 안 되는 기억이 담긴 듯하다. 하지만 시인은 그 불태워버린 기억을 되살리고자 “내 왼손이 오른손을 잡”는다. 하여, 되살아난 상처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시인은 “헐렁한 외투와 낡은 구두” 차림으로, 그가 살아온 삶이 열어놓은 기억의 공간, 그 피 흐르는 상처의 공간을 방랑하고자 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