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미
선운사 절문 앞에 늦도록 앉아 있었네
꽃들은 모두 한 곳을 바라다보고 있었네
죽음이 이미 와 있는 방문 앞보다
더 깊고 짙은 어딘가를 향하고 있는 꽃들
동백을 홀로 바라본다는 일은,
큰 산 하나 허물어져 내릴 만큼 고독한 일
어쩌면 기억도 아득한 전생에서부터
늑골 웅숭깊도록 나는 외로웠네
꽃핀 숲보다 숲 그늘이 더 커 외로웠네
하여 봄볕에 흰 낯을 그을리며 나는
선운사 절문 앞에 한 오백 년 죽은 듯이 앉아
동백이 피고 지는 소리를 다 듣고 말았네
(부분)
“죽음이 이미 와 있는 방문”을 바라보고 있는 선운사 동백꽃들. 이 “동백을 홀로 바라본다는 일은” 시인 역시 동백과 함께 죽음 너머 어딘가를 응시하는 일, 하여 시인은 자신의 외로움이 “기억도 아득한 전생에서부터” 비롯되었으며 동백이 다 떨어진 동백숲이 “어떻게 마음을 정리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삶과 죽음의 숱한 과정들, 그 사랑과 고통의 마음을 어떻게 정리하는지를 한 순간 다 꿰뚫어보게 된 것.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