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가 싫었다 / 무엇이든 엉망으로 휘감는 넝쿨식물이 싫었다 // 곁을 둔다는 말 / 곁은 조금 떨어진다는 말 / 시든 풀포기를 심어도 되살아 오를 것 같고 / 차 한 잔 놓아두고 싶은 곳 / 반쯤이나 손을 내밀면 닿을 거리”
배냇정서는 농촌이고 감각은 도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전영관 시인의 시집 ‘바람의 전입신고’(세계사, 2012)에 수록된 시 ‘곁’의 1연과 2연이다. 쌉사래하면서 달짝지근한 칡물처럼 그의 시구를 몇 번 곱씹으니 처음에는 갸우뚱하던 의미가 은근히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와 박힌다. 담쟁이는 곁을 두지 않는다. 무엇이든 그냥 휘감거나 붙어서 자라고 살아간다. 차 한 잔 놓아두고 싶은 정도로, 손 내밀면 닿을 정도로 조금은 떨어져 있는 것이 마음 편한데, 담쟁이는 그렇지 못하다. 시인은 여유 없이 휘감고 들러붙는 담쟁이 같은 존재들이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곁’은 ‘어떤 대상의 옆 또는 공간적·심리적으로 가까운 데’를 뜻하기도 하고 ‘가까이에서 보살펴 주거나 도와줄 만한 사람’을 뜻하기도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로 중국과 일본이 있다. 이 두 나라가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의 ‘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시나 우리에게 이들 나라는 시인이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했던 담쟁이와 같은 존재는 아닐까?
1965년 6월 22일에 한일협정이라고도 불리는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되었다. 조약의 조인과 함께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 ‘어업에 관한 협정’, ‘문화재·문화협력에 관한 협정’ 등 네 개의 부속 협정이 함께 체결되었다. 이로써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이후 20년 동안 단절된 상태에 있었던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졌다. 이 조약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일본이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인정하게 함으로써 일본의 북한 접근을 견제한 것이다. 한일기본조약은 5·16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의 정당성 확보와 안정적 정착에 기여하였다고 평가되고 있다.
조약이 체결된 지 57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는 어떠한지 다시금 생각해 볼 일이다. “양국의 공통의 복지 및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고 국제평화 및 안전을 유지하는 데 양국이 국제연합헌장의 원칙에 합당하게 긴밀히 협력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라는 조약의 문구가 과연 잘 이행 되고 있는가? 추상적 선언의 문구니 왈가왈부해서는 안되는 것인가?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나 미국과 멕시코의 관계도 그렇듯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 사이에는 정치 경제와 사회 문화적인 갈등과 긴장이 상존한다지만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여느 나라들보다 더욱 복잡미묘하다. 부속협정인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라 1966년부터 10년에 걸쳐 도입된 5억 달러의 대일청구권자금으로 한국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강제 징용 피해자의 배상 등 전후 배상의 문제는 완결되지 못한 채 갈등 속에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가까이 있지만 결코 가깝지 않은 일본. 새 정부는 어떻게 한일 관계를 풀어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