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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손

등록일 2022-06-19 18:06 게재일 2022-06-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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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서

손 하나 들이밀고 시집 왔니라

너로 허먼 시할애빈디

내게는 영 마뜩찮은 분이었제

아무렴, 글만 아는 집안이래두

풀 한 포기에 베인 손이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열흘을 가야?

논으로 밭으로 내달리다

흰 쌀밥 고봉으로 퍼드리먼

에미 손은 머슴손이어,

에미 손은 머슴손이어,

오장이 뒤틀리게 사무쳤니라

 

마당 한 귀퉁이 무쇠솥이 끓는데

어머닌 행주도 대지 않은 손으로

뚜껑을 열고

뜨건 물을 푹푹 퍼 나르시네

논밭의 일을 다 하고도 집에 들어오면 가사를 해야 했던 어머니. 그녀의 ‘에미 손’은 어느새 ‘머슴손’과 같이 되어버렸다. 어머니는 남성중심주의적인 사회, 노동보다 글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죽도록 일만 하는 머슴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야 했던 것. 하지만 시인은 도리어 뜨거운 뚜껑을 맨손으로 열 수 있는 ‘푸른 손’에서 글쟁이 남성들은 가질 수 없는 어떤 힘-민중의 힘-을 발견한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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