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독주하려는 게 아니라면 합의 지켜야

등록일 2022-05-29 20:14 게재일 2022-05-30 3면
스크랩버튼
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어제 박병석 국회의장 임기가 끝났다. 지난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의장단을 초청해 위로 만찬을 베풀었다. 전반기 의장단의 역할이 끝났다는 말이다. 그러나 후반기 원 구성은 보류다. 여야 협상에 진전이 없다. 민주당은 지난 24일 김진표 의원과 김영주 의원을 국회의장과 부의장 후보로 선출했다. 그러나 여야 합의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이 합의를 번복해 법사위원장을 넘기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전반기 원 구성을 하던 행태를 보면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도 있다. 국회의장이 되면 민주당 당적을 버려야 하는 김진표 의원은 “내 몸에는 민주당 피가 흐른다”라고 주장했다. 중립성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지방 선거에서 역풍을 맞을까 두려워 미뤄두고 있을 뿐, 선거만 끝나면 큰 소리가 날 수 있다.

1988년 13대 원 구성부터 국회 상임위는 여야가 의석 비례로 나누어왔다. 그 이전에는 제1당이 모두 가졌다. 노태우 정부 때 처음으로 여소야대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다수결로 하면 야 3당이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을 모두 가져갈 형편이었다. 이 바람에 의석 비례로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나누어 맡기로 합의한 것이다.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가 적극적으로 주장한 대로다.

국회 법사위원장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 소추되면서 주목받았다. 탄핵소추의 검사 역할을 김기춘 법사위원장이 맡았다. 법사위는 그 밖에도 법원·헌법재판소와 법무부·법제처·감사원·공수처 등 사법 관련 정부 기관은 물론 다른 상임위에서 만든 법률의 체계·형식·자구를 심사하는 권한도 갖고 있다. 다른 상임위에서 통과한 법안을 법사위에서 붙들고 있거나, 수정하는 일도 빈번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상임위의 상전, 상원 역할을 해왔다.

2004년 총선에서는 탄핵 후폭풍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제1당과 제2당이 나누어 맡는 관행을 만들어 다수당의 입법 폭주를 막을 최소한의 장치를 보장했다. 행정부 견제가 아니라 다수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176석의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생겼다. 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 등을 국민의힘과 합의 없이 처리할 수 있도록 법사위원장까지 차지하겠다고 버텼다. 이 바람에 합의가 어려워졌고, 민주당은 그 핑계로 국회의장과 18개 상임위원장을 몽땅 독식해버렸다.

지난해 7월에서야 국민의힘에 7개 상임위원장을 넘겨주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법사위원장은 올해 후반기 원 구성할 때 넘겨주겠다고 미뤘다. 이제 그 약속마저 뒤집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기 일주일 전 2차 ‘검수완박’ 관련 법률을 민주당이 단독 처리했다. 법사위원장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드러난 셈이다. 후반기도 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모두 차지해 합의와 상관없이 국회를 운영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법사위원장은 검찰 수사와 대통령의 탄핵소추까지 담당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하려면 국회의장으로 충분하다.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국민의힘이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법사위원장을 가져봐야 다수당의 전횡에 저항하는 방어적 역할이다. 법사위원장이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까지 막을 수는 없다. 결국 대통령 견제보다 국회 독주를 위한 독식이라고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다.

국회에서 다수결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도 옳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합의제 운영의 전통을 쌓아왔다. 민주당의 대부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앞장서 세운 전통이다. 모든 책임을 제1당이 지는 완전 다수결로 돌아가려는 게 아니라면 중요 길목을 나누어 맡는 전통은 살려야 한다. 다수결로 밀어붙이면 협상이 필요 없다. 소수 의견은 무시되고, 다수의 독재가 된다. 독주에는 역풍이 따른다.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대통령 탄핵을 도모하려는 게 아니라면 법사위원장을 넘기겠다는 합의는 지키는 게 옳다. /본사 고문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김진국의 ‘정치 풍향계’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