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정치풍항계
이재명 대통령은 경선 후보 시절 “야당 대표를 가장 먼저 만나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 토론회에서 “대통령이 되면 가장 먼저 누구를 만나겠느냐”라는 질문을 받고서다. 그는 “여야 대화도 끊어지고 너무 적대화 돼 있다. 대통령이라도 시간 내고 설득해서 여야 대표, 특히 야당 대표와 주요 정치인을 만나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치라는 게 혼자 잘 사는 게 아니라 나라가 잘되고, 국민이 잘되자고 하는 것”이라며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얘기하도록 하겠다”라고 강조했다.
그 말을 이제 실현하게 됐다. 이 대통령은 오늘(8일) 여야 대표를 대통령실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한다. 오찬 뒤에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단독 회동도 할 예정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해외순방에서 돌아오면 야당 대표를 불러 설명하는 게 관례였다. 야당 대표와 단독회동을 하자는 국민의힘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양을 갖췄다. 의제도 국민의힘 주장대로 제한을 없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이재명 야당 대표와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 이 대표가 ‘영수회담이든, 여야 지도부 면담이든 형식은 뭐라도 좋으니, 민생을 위해 일단 만나자’라고 여러 차례 반복해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영수회담을 제안하는 참모들에게 이 전 대표의 과거 이력을 들먹이며, “내가 왜 이런 사람과 만나야 하느냐” “범죄 피의자 아니냐”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참패하고 나서야 갑자기 영수 회담을 했다. 그러나 4월 29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수 회담이었다. 마음에도 없는 대화를 계속 이어가기는 어려웠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야당과 대화를 거부한다. 그는 지난달 말 페이스북에 “상식적으로 나를 죽이려 했던 자들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웃으며 대화할 수 있을까?”라며 “나의 대답은 NO”라고 썼다. 야당 지도부를 만나면 악수는커녕 눈길도 피했다. 윤 전 대통령과 판박이다.
정 대표는 국회에서 독주한다. 무조건 다수결로 밀어붙인다. 모조건 다수결로 처리하면 국회가 왜 필요한가. 일방적인 정책을 당내는 물론 야당까지 찍어 누른다. 대통령이 다수표를 얻었다고 전횡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파시스트 정당이 써먹던 위험천만한 반민주적 발상이다.
법안 처리와 의사 진행뿐 아니다. 이제 야당의 견해를 대변해 협상하는 야당 간사마저 여당 입맛대로 정하겠다고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지나치면 부러진다. 지금 국민의힘은 동네북 처지다. 약장수 같은 유튜버들의 선동이 당대표를 결정할 정도로 줏대 없이 휘둘린다. 보수 지지자들의 마음도 당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유일한 응원군이 민주당이다.
절제라고는 모르는 민주당의 강성 모드가 극우세력에게 명분을 제공한다. 민주당의 유치한 선명 경쟁 탓에 말도 안 되는 극우적 주장이 합리적 근거를 얻고 있다. “오죽하면…”이라거나 “그래도 정청래를 응원할 수는 없지 않으냐”라는 주장이 떠나던 보수 지지층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야당의 극우화가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에 유리할지도 모른다. 강성모드로 서로 자기 표를 깎아 먹어도, 전국적인 판세에서는 그래도 불리한 게 ‘윤 어게인’이다.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용납할 수 없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도긴개긴 극우화에 명분을 주고, 불씨를 지피는 언행은 역사에 죄를 짓는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스스로 무너질 ‘윤 어게인’이나 극우적 주장이다. 그런데 “민주당 하는 것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라는 말이 나오게 만든다. 극우 주장이 먹혀들도록 명분을 제공하는 것 역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공범이다.
이 대통령은 양대 노총을 만난 자리에서 “내가 편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민주당의 성공도 중요하겠지만, 대한민국의 성공이 더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그로 인해 더 발전했느냐, 후퇴했느냐가 역사에 기록된다. 두려울 게 없다. 지난 정부를 따라 할 이유가 없다. 보수 인사들 사이에서도 이 대통령이 “의외로 잘하고 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조금 더 포용과 관용을 발휘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바란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