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길
등을 돌린 사람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준 벽지는
등을 기대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흔한 아픔들을
조용히 보았을 터이다
들이닥치는 도배장이들처럼
이별은 예상보다 성큼 온다
한껏 누추한 표정으로
잠시라도 바라보아주기를 바라는 벽지는
이내 덮인다
상처가 아물듯
벽지의 한 생이 묻힌다.(부분)
도배장이인 시인의 눈에 저 벽지가 시적인 의미를 띠는 것은, 그 벽지 자신이 “등을 돌린 사람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면서 숱한 삶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흔적을 자신의 몸에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벽지에 시대의 흐름에 파묻혀 사라져야 하는 소외된 삶이 어른거리고 있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포착한다. 하여, 이 고통의 흔적 위에 새 벽지를 도배하여 “벽지의 한 생”을 묻음으로써 상처를 아물게 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