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선
우리가 어디론가 스며드는 일은
조금은 비굴하게 흘러드는 일이고
밤 불빛처럼 적요하게
단단한 씨 하나로 뒤척이며 그럴수록 응고되는 것
말없이 흘러온 길마다
외투를 벗듯 쉽게 허물을 벗었나, 지금쯤
똬리는 空을 품은 듯 틀었겠나, 겨울 길
늦은 밤 희부연 차창처럼
더듬이 하나 없이 견뎌온 길들
남은 이파리 하나
마저 털고자 호흡처럼 수천 번을
긴 혓바닥 내민 채로 굳었지만
그 바람소리를 깨우는 겨울나무 가지여(부분)
생존의 압박으로 굴욕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노동자들-우리’의 삶. 위의 시에 따르면, 그 ‘우리’는 “어디론가 스며”들어야 하기에 세상 속으로 “조금은 비굴하게 흘러”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밤 불빛처럼 적요”하나마 “단단한 씨 하나”를 가지고 흘러들었기에, 비록 세상 속에서 뒤척이기는 하지만 세상 속에 용해되지는 않는다. 도리어 어떤 ‘멍울진 옹이’처럼 응고된 무엇-‘허물’-을 흘러왔던 길마다 남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