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향
어깨 옆에 어깨 옆에 어깨 옆에 어깨
를 걸치고 빈틈없이 깍지낀
풀들의 머리에 납가루 폭탄이
몽땅 구멍을 냈다
납가루는 풀의 심장으로
스물스물 기어들어가 석고처럼 굳은
납가루 심장을 만들어냈다
얼굴이 납빛으로 파리해진 풀잎들
순식간에 살이 다 녹아내려
헐거워진 몸으로 눈을 감는다
그날
땅에 있는 풀밭은 모오두우
구멍이 뚫려 눈감은 풀의 머리가
땅 밑으로 쓰러졌다
땅은 벌집 같은 구멍투성이가 되었다.
(부분)
죽음의 이미지가 주조로 되어 있는 위의 시는 묵시적인 암울함으로 덮여 있다고까지 할 수 있겠다. 현대 물질문명의 생태 살육행위는 전쟁에서의 살육행위에 비유되는데, ‘납가루 폭탄’이 어떻게 풀들을 죽이는가가 섬뜩하게 그려진다. 풀들을 죽은 육체로 점점 변화시키고 있는 납. 풀들이 구멍이 뚫려 쓰러지는 모습은 참혹하다. 이러한 상상적 묘사는 환경 파괴의 가공할 잔인성을 더 리얼하게 드러낸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