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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지구

등록일 2022-04-24 18:18 게재일 2022-04-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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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

텔레비전 화면이 풀죽처럼 흘러내린다

술 취한 밥상이 아버지를 뒤엎고

값싼 본드를 마신 아들이

날개를 자르고 내려와 공터에서 헐떡인다

더 이상 철거되는 걸 기다릴 순 없다

다짐을 덧칠한 벽엔 금이 가고

기둥은 토박이 정신을 버린다

 

연탄가스가 독 오른 살모사처럼 기어오를 때

상속권 없는 저녁별이 떠오른다

불 꺼진 골목과 낙오자의 방

 

21세기가 급하게 채널을 돌린다(부분)

위의 시가 보여주는 희망 없는 철거지에서의 삶의 모습이 21세기적 삶의 현 주소 아니겠는가. 파괴된 철거 지역에서, 상속권이 없어 갈 곳 없이 여전히 삶을 연명해야 하는 사람들, 그 ‘낙오자의 방’에는 “독 오른 살모사처럼 기어오”르는 연탄가스가 그들의 생명을 노리고 있다. 지배층으로부터 추방된 이들의 삶은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고 온갖 위험과 죽음에 노출되어 있는 것, 이것이 시인의 현실 진단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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