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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저녁

등록일 2022-04-21 18:18 게재일 2022-04-2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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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호택

내 생애의 수많은 저녁 중에

가장 포근한 저녁은

황혼인지 샐녘인지 분간 못하게

어슴푸레한 미명이었다

 

어서 일어나 학교 가거라

부시시 깨어 듣는 어른들 말씀이

한바탕 웃음 끝에

거짓말이 되는 순간이었다

 

낮잠 자는 나를 놀리자고

누군가 일부러 지어낸 말인 줄을

알아차린 그 다음

부자가 된 듯한 동안이었다

우리가 부자였던 ‘순간’-‘동안’-이 있었던가. 있었다. 어른들의 놀림에 자신도 배시시 수줍게 웃던 유년 시절의 순간이 바로 그때다. 그 유년의 시간을 지금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저 흐릿하고 어두운 기억 창고 이외엔 없다. 유년을 기억하는 몽상-미명-의 시간은 시인에게 “가장 포근한 저녁”이다. 하나 유년의 순간은 다시 현실화 될 수 없기에, 그 아름답고 풍요로운 몽상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변화되리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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