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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나(1)

등록일 2022-04-19 18:27 게재일 2022-04-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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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

길이 모두 접혀 있는 건너편 언덕 밑에는

울타리가 있는 집을 두 채 그려 넣는다

 

조금 더 안쪽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와

그늘을 펼쳐 그려 넣는다

 

(….)

 

 

 

나는 천천히 그 사이로 난 길을 걸어

지금의 느티나무의 그늘을 한쪽 어깨에 걸고 있다

 

산을 너무 멀리 그려 두었나?

산으로 가는 길이 곳곳에 끊겨 있다

(부분)

상상으로 그려진 시의 세계인만큼, 시인 자신이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할 법이 없다. “시인은 천천히 그 사이로 난 길을” 걷는다. 이때 시 쓰기의 아이러니가 발견되는데, 내가 구축한 세계 속에 내 자신이 들어가 걸어갔을 때, 비로소 그 길들이 곳곳에 끊겨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시인인 내가 만든 상상 세계가 ‘나’와는 무관하여 알지 못할 무엇으로, 자족적 세계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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