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물푸레나무 앞으로 집을 짓는다
바람이 잘 통하고
자줏빛 그늘이 진다
귀가 없는 새가 와서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보고 싶은 사람이 온다기에
막 피어난
부용꽃 꽃잎으로 또 한 채
집을 짓는다
무엇인가 귓전을 매암돌다
멀리멀리 너울져간다
종소리 모양의
장맛비가 저만치 오고 있다.
시인은 상상의 힘으로 집-시-을 짓는다. ‘부용꽃 꽃잎으로’ 만들 수도 있는 비현실적인 집. 이 집은 상상의 시공간에 존재하기에 소리 없는 세계다. 그래서 귀 없는 새가 와서 자신의 집으로 삼을까 기웃거리는 집이다. 하지만 이 집의 바깥 세계에서 나는 장맛비 소리가 이 상상 세계 안으로 틈입하면서 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이 소리와 소리 없는 상상 공간이 교차될 때 위의 시의 시적 순간이 마련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