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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시

등록일 2022-04-14 17:59 게재일 2022-04-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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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

마당가 돌무더기에 흰 끄나풀 같은 것이 어른거린다

뱀허물이다 머리를 땅에 박고,

이리로 저리로 요렇게 조렇게 들어가셨소

내가 그 증거요!

온 허물로 가리킨다

이건 단순한 허물이 아니라

뱀에 의한,

뱀이 썼던 허물이 분명하다

 

한 마디로, 이 안에 뱀이 있었다는 것

저 안 어디쯤

진짜가 있다는 것

울고불고 마지막까지

뒤집어쓰고 살아온 시를 놓아주고

생것이 사라져간 쪽을 향해

입 꽉 다물었다

시는 뱀이 쓴 허물이다. 진짜 생것은 “저 안 어디쯤” 사라져갔다. 시는 껍데기일 뿐이다. 하지만 시는 껍데기긴 껍데기이되, ‘생것’의 흔적으로 남아 있으면서 생것의 존재를 ‘증거’한다. 생것은 언어와 의미로 번역될 수 없는 육체적 삶 그 자체 아닐까. 아무튼 발화와 침묵 사이에 있는 저 허물 같은 시는, 그 ‘사이’를 통하여, 생것이 실재했음을 확인시켜주면서 우리 앞에 그것이 도래하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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