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안
마당가 돌무더기에 흰 끄나풀 같은 것이 어른거린다
뱀허물이다 머리를 땅에 박고,
이리로 저리로 요렇게 조렇게 들어가셨소
내가 그 증거요!
온 허물로 가리킨다
이건 단순한 허물이 아니라
뱀에 의한,
뱀이 썼던 허물이 분명하다
한 마디로, 이 안에 뱀이 있었다는 것
저 안 어디쯤
진짜가 있다는 것
울고불고 마지막까지
뒤집어쓰고 살아온 시를 놓아주고
생것이 사라져간 쪽을 향해
입 꽉 다물었다
시는 뱀이 쓴 허물이다. 진짜 생것은 “저 안 어디쯤” 사라져갔다. 시는 껍데기일 뿐이다. 하지만 시는 껍데기긴 껍데기이되, ‘생것’의 흔적으로 남아 있으면서 생것의 존재를 ‘증거’한다. 생것은 언어와 의미로 번역될 수 없는 육체적 삶 그 자체 아닐까. 아무튼 발화와 침묵 사이에 있는 저 허물 같은 시는, 그 ‘사이’를 통하여, 생것이 실재했음을 확인시켜주면서 우리 앞에 그것이 도래하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