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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점점 여리게

등록일 2022-04-12 18:17 게재일 2022-04-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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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창문 밑에 매달린 고드름들 사이로,

흐린 하늘에 목매달아 죽은 가오리연을 본다

하늘을 휘젓는 연의 시체는 부드럽다

까만 바람, 겨울은 낙타를 타고 걷는다

 

 

(….)

구상나무는 아무것도 모르고 순하게 죽어 있다

뿌리에서 또 다른 슬픔이 자라는 줄도 모르고

죽은 몸과 자라나는 슬픔 사이의 여백이 차갑다

 

애인은 겨울을 건너, 봄으로 갔다

 

 

내 발가락 사이사이 틈

꼬아진 다리 사이

멀리 돌아온 입술과 입술의 포개짐에도

서글픈 여백이 맺히고,

갈변한 사과를 반으로 쪼개면

속살은 여전히, 잊혀진 듯 희다.

겨울은 사막과 같은 시간을 건너가는 계절이다. 사막의 밤바람처럼 겨울의 바람도 까맣다. 그래서인지 겨울은 까만 죽음의 계절이다. 애인은 봄으로 떠나가고, 하여 “고드름 사이로” 가오리연이 목매달아 죽는 계절. 시인은 이 죽은 세계에 슬픔을 자라게 하여 “죽은 몸”과 “슬픔 사이”에 ‘여백’을 만든다. ‘갈변한 사과’와 같은 세계를 쪼개 차가운 여백, 그 흰 속살을 드러내기. 이것이 이 시인의 시 쓰기일 것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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